'월드컵 챔피언.' 한국이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 자리에 오른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한국이 우승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한국이 16강에 올랐을 때도,8강에 올랐을 때도 한국의 우승 가능성은 그저 농담섞인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우승가능성은 다른 4강 진출팀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외국 언론이나 펠레를 위시한 축구전문가들도 한국이 우승팀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국은 실력면에서 세계 최강에 근접해있다.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8강전까지 총 5경기를 통해 드러난 한국의 전력은 예상외로 강했고 경기를 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큰 강점은 체력.한국은 지난 3월부터 거의 쉬는 날 없이 체력강화 훈련에 전념해온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체력으로 월드컵을 맞을 수 있었다. '무쇠 체력'은 한국축구의 장기인 스피드를 경기 내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줬다. 예전에는 초반에 잘 나가다가 뒷심 부족으로 동점골이나 역전골을 허용했는데 오히려 이번에는 뒤지다가 경기를 뒤집는 모멘텀이 됐다. 미국전에서 0-1로 패색이 짙다가 후반에 안정환이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킨 것이나 포르투갈전에서 막판에 박지성이 결승골을 뽑아낸 것,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종료 2분을 남겨두고 설기현이 역전의 발판이 될 동점골을 얻어낸 것이 이를 입증한다. 여기에 조직력은 이번 월드컵 출전국 중 최상이라는 평가다. 톱니바퀴처럼 딱 맞춰 돌아가는 조직력은 우승후보로 거론되던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무너뜨리는 원동력이 됐다. 선수들은 경기를 치르고 나면 모두 하나같이 "뛰는 선수들이나 안뛰는 선수들이나 모두 한마음이 된 게 승리의 원동력이다"고 밝혔다. 특히 선수들이 공격,수비 가릴 것 없이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갖추면서 한국은 무서운 팀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월드컵 정상을 넘볼 수 있는 강점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붉은 악마다. 월드컵 개최국은 누구나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좀 특이하다. 유럽과 남미의 열광하는 축구팬들을 뛰어넘는 '붉은 악마'응원단과 수백만명의 길거리 응원은 선수들의 사기를 무한대로 증진시켰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나 선수들은 "국민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고 매경기 후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국과 경기를 치른 외국선수와 감독들도 "응원이 가장 위협적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16강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펼치던 이탈리아가 막판에 동점골을 허용하자 응원석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체력의 한계에 도달한 선수들은 응원에 힘입어 다시 빠른 움직임으로 이탈리아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4강전에서 만나게 되는 독일은 수비위주로 플레이한다. 8강전에서 미국이 스피드를 앞세운 공간침투로 독일 수비진을 열려고 하다가 제풀에 꺾여 무릎을 꿇고 말았다. 장신을 이용한 독일의 공격도 위협적이다. 하지만 한국이 갖고 있는 강점이 제대로 발휘만 되면 의외로 쉽게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승전에서 만날 확률이 높은 브라질은 가장 우승에 근접해 있어 힘든 상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호나우두-히바우두-호나우디뉴 '공격 편대'를 한국의 압박수비가 제압한다면 한국이 '월드컵 챔피언'이 되는 기적 같은 일이 현실이 될 것이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