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으로 압축된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사상 가장 많은 '이변'이 속출했다. 월드컵에 첫 출전한 세네갈이 개막전에서 전대회 우승국 프랑스를 꺾고 8강까지 오른 건 파란의 서곡에 불과했다. 유럽의 '축구 변방' 터키의 4강행과 미식축구 야구 등 국내 인기종목에 가려 있던 미국 축구팀의 8강 진출 등 숱한 이변극이 연출됐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2002 대이변 드라마'의 주인공은 단연 한국이다. 세계 랭킹 40위짜리가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열강'을 제치고 4강에 오른 것은 세계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풋내기'들의 잇단 돌풍 속에서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등 전통의 강호들은 조 예선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치욕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결과를 '이변'이라는 한마디로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후발주자들이 뼈를 깎는 체력 및 전술 훈련을 다지고 또 다지는 동안 상당수 '축구 선진국'들은 허명(虛名)에 기대어 몸 만들기와 팀워크 훈련 등 기본적인 준비조차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번 월드컵이 지구촌에 던진 '이변'의 메시지는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셔널리즘의 변주(變奏)'다. 국가대항의 축구 경기는 국제사회에서 내셔널리즘의 분출이 공공연하게 용인되는 '마지막 형식'이라는 걸 먼저 염두에 두자.평소 같으면 '국수주의'의 위험한 발로(發露)로 여겨질 광적인 국가대항 응원전이 월드컵 대회에서 만큼은 자연스런 애국심의 표출로 수용된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출전팀들의 구성원 면면을 보면 뭐가 뭔지 모를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적지않은 국가가 외국인 용병을 상당수 대표팀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세계 축구랭킹 1위인 프랑스는 11명의 주전 선수들 가운데 트레제게,앙리,튀랑,시세 등 6명이 피부가 검은 아프리카 출신들이었다. 축구 종가를 자랑하는 잉글랜드도 헤스키,애슐리 콜 등 흑인들을 간판 선수로 앞세웠다. '게르만민족 우월주의'가 유독 강하다는 독일조차 주전 골게터인 클로제가 폴란드 출신의 이중 국적자이고,플레이 메이커 노이빌레는 독일인들이 평소 얕봐 온 스위스 사람이다. 이밖에도 나이지리아 출신의 골게터 올리사데베를 대회 직전 귀화시켰던 폴란드와 브라질의 산토스를 수입한 일본 등 용병을 통해 전력증강을 꾀하지 않은 나라가 별로 없을 정도였다. 돌풍의 한국축구도 네덜란드인 히딩크 감독의 역할이 절대적이라 할 만큼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을 이런 파격을 각국 국민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용병들의 분전에 열광하며 애국심을 발산하는 모습에서 내셔널리즘을 뛰어넘는 글로벌리즘의 세계사적 단면을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 단면을 보면서 한국의 조직문화를 되돌아보게 된다. 정기 공채에 의한 '기수주의(期數主義)'로 요약되는 한국내 조직의 순혈주의가 스스로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해묵은 지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기업들은 변하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정기 공채 대신 경력자를 수시 채용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고,최근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국적을 불문한' 고급 인재의 광범위한 채용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남은 부문은 역시 정부다. 현 정부 들어 일부 공무원 직책을 계약·개방직으로 돌려 외부 인력을 수혈받긴 했지만,여전히 핵심 보직은 행정고시를 거친 '기수 출신'이 독과점하는 순혈주의를 버리지 않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은 강해지고 있는데 정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왜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지를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하게 된다. 이학영 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