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통상백서에서 일본은 한국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시각을 경쟁보다는 협력에 무게중심을 두는 쪽으로 수정했다고 한다. 거의 동시에 일본 재무성이 '일본식' 산업정책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도 주목할 일이다. 이런 일련의 것들이 만약 일본의 정책변화를 예고한다면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일본 정부가 통상백서에서 주변국을 협력 및 통합 파트너로 인정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는 일본이 앞서 나가고 한국 아세안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이 뒤를 따르는 소위 '기러기형' 경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본의 기본적 시각이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 통상백서에선 일본의 위기감을 표출,주목을 끌었다. 특히 급부상하는 중국을 라이벌로 간주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분업구조가 깨지고 첨단산업마저 위협받고 있다면서 중국 한국 등 각국이 각축을 벌이는 '대경쟁 시대'에 돌입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통상백서에서는 "일본은 주변국들의 경제력 향상을 위협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쟁상대이자 동시에 통합과 협력상대로 수용해야 한다"며 동아시아 지역과의 수평적 협력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 큰 특징이다. 이와 함께 주목할 것이 "정부의 산업정책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일본 재무성의 비판이다. 이 역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의미가 크다. 대외경쟁력이 높은 산업은 정부의 정책간여가 덜했지만 저성장 산업분야의 경우 정부가 개입해 부작용만 초래했다는 지적은, "과거 일본의 고도성장이 옛 통산성의 산업정책 덕"이라는 기존의 평가를 뒤엎은 것이라고 할 만하다. 한마디로 지나친 정부개입에 대한 반성이다. 이를 조금 확대해서 생각하면 이번 통상백서에서 드러난 시각전환과 무관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일본의 자국중심적 대외 경제정책은 사실 그들의 폐쇄적 산업정책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것이 산업의 자연스런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나아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그 경제규모에 걸맞은 협력적 역할을 제한한 하나의 요인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이런 변화가 호혜적인 차원에서 한국 중국 등과 함께 지역경제 협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겠다는 인식의 발로라면 이는 분명 환영할 일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형성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연대감이라든지 한·일간 협력분위기를 보아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