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줄곧 DJ와의 차별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노 후보가 6·13지방선거 참패 이후 어려운 처지에 몰리자 말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노 후보는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뒤 대통령 아들 비리의혹 문제가 불거지자 "야박하게 대통령과 차별화하지 않겠다"고 말해 왔다.


그는 지난 5월 14일 관훈토론회에서 "굳이 차별화라는 이름을 통해 관계있는 것을 없다고 우기는 행위가 책임있는 자세냐"며 "차별화하는 식의 속임수 비슷한 것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후보는 이어 김 대통령의 3남 홍걸씨가 구속된 뒤인 6월 1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정치하는 사람이 진실로 바뀌지 않으면서,단절될 수 없는 과거에 대해 다르다고 속임수를 쓰는 것은 떳떳지 못하다"며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던 노 후보는 26일 시민단체와의 간담회에서 "차별화 안한다고 얘기할 때는 정치적 공과를 논의할 때였고 부패문제가 그렇게 드러나지 않을 때였다"며 "지도자로서 결단을 내리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의 두 아들이 구속돼 상황이 판이하게 바뀐 만큼 '탈(脫) DJ행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노 후보는 발언이 파장을 낳자 27일 기자들과 만나 "'난 책임없다,네가 책임져라' 식의 책임회피성 차별화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발 뺐으나 이미 차별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노 후보는 입장변화의 근거로 달라진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대선후보로 선출됐을 때 대통령 아들 비리문제는 불거진 상황이었고 홍걸씨가 구속된 이후에도 기존의 입장을 고수해온 터였다.


노 후보가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자유다.


다만 말바꾸기를 밥먹듯이 하던 과거 정치지도자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 당이 잘못한 게 있으면 그 잘못을 짊어지고 반성과 개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노 후보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이재창 정치부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