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북서쪽 산자락에 자리잡은 레스토랑 벅스엔 요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다. 지난해의 썰렁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이른 아침 시간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벅스는 벤처캐피털들이 몰려있는 샌드힐로드에 가까이 있어 벤처캐피털리스트와 벤처기업가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벅스에 사람이 몰린다는 건 그만큼 투자상담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터넷 버블이 꺼진 후 사실상 동면 상태에 들어갔던 막대한 자금이 먹이사냥 채비에 나선 것이다. 미벤처캐피털협회(NVCA)가 벤처이코노믹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공동으로 분기마다 발표하는 머니트리 서베이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미국 벤처캐피털의 투자액은 62억3천만달러였다. 투자규모의 하락세는 지속되고 있지만 내부적인 움직임은 부산하다. KTB네트워크 미국 법인 KTB벤처스의 윤승용 사장은 "요즘 벤처캐피털리스트들끼리 비즈니스 기획서를 주고 받는 e메일이 부쩍 늘었다"며 "거품 붕괴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 업계가 꿈틀거리는 이유는 여건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닷컴 붕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훨씬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다. 페이팔이나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 기업의 상장이 성공한 것도 비즈니스 모델이 믿을 만해서다. 레드포인트 벤처스의 존 왈레츠카 파트너는 "버블이 꺼지면서 기업가치 평가도 적정수준으로 회귀해 적은 자금으로 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말했다. 벤처 투자 행태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기본적으로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다. 상용 제품은 아니더라도 시제품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고 소비자 반응도 확보해야 벤처캐피털에 투자해달라고 얘기를 꺼낼 수 있다. 달랑 사업계획서 한장으로 수천만달러를 끌어들였던 사례는 이제 '전설'과 같은 얘기가 됐다. 실리콘밸리=정건수 특파원 ks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