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도 다 아는 옛날 얘기 한 토막. 황희 정승이 약관의 진사 시절 길을 가다 두 마리 소에 쟁기를 달아 논을 갈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냐"고 묻자 늙은 농부는 소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황희를 데려갔다. 그리곤 귀엣말로 "누런 소가 검은 소보다 낫다"고 알려줬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자기를 흉보면 기분이 상한다"는 것이 노인의 설명이었다. 검은 소와 누런 소는 회사로 치면 종업원들이다. 일 잘하는 사람을 키워주는 것 못지 않게 성과는 적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는 사원들을 실망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 그룹을 필두로 '최고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국적도 묻지 않고 최고 대우를 해가며 그것도 사장들이 직접 데리고 오겠단다. 회사를 위해선 옳은 길이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 말마따나 '1만명을 먹여 살릴 창의적인 천재 1명'을 찾아 올 수만 있다면 손해 볼 것도 없는 투자일 것이다. 그러나 '최고 인재' 스카우트 방침을 내놓는 순간, '검은 소'들은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 없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가슴 한 구석에 갖고 있던 '나는 안될지 몰라'하는 두려움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우수 인력 스카우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을 두고 기존 인력에 대한 재교육과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기회의 평등을 얘기하자는게 아니다. 그런 보완책을 준비하지 않으면 적잖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하고싶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클레이톤 알더퍼의 'ERG 좌절.회귀 이론'에 따르면 '성장(G)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원은 그 아랫단계인 '관계(R) 욕구'에 매달리게 된다. 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어렵게 된 만큼 줄 서고 편가르는 처세술에 더 신경을 쓰는 경향을 보인다. 이마저 제한을 당하면 최저위 단계인 '존재(E)욕구'에 집착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뭉치고 때론 과도한 임금을 요구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새로운 인재가 충원된다는 것은 기존 사원들에겐 성장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그나마 작은 가능성을 놓고 마음 졸여온 기존 사원들이 낙심천만의 비탄에 빠질지 모른다. 심할 경우 "잘해봐야 소용없다"는 무력감, "이럴 때 일수록 내 밥그릇을 지켜야 한다"는 집단 이기주의로 변할 수도 있다. 부작용은 또 있다. 애써 뽑아온 인재들이 몇년 지나지 않아 훌쩍 떠나버릴 경우 조직엔 더 큰 상처만 남는다. "업무 성과가 높은 직원은 이직률이 낮지만 업무 성과가 최고로 높은 직원은 이직률이 아주 높다"(머서휴먼리소스컨설팅 보고서)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방법은 있다. 기존 사원들에게도 똑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스카우트된 인력과 같은 성과를 올리는 기존 직원에게도 파격적인 대우와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또 그렇게 실천하는 방안이다. 검은 소도 하기에 따라 누런 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일이다. 사람은 조금이라도 기회가 남아 있어야 비전을 갖게 되고 또 자신을 던진다.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상식이 왜 다시 중요해질까. 직장인들에게도 이제 탈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직과 창업, 독립 말이다. 그런 탈출을 부추기는 '역차별'로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스레 접근할 일이다. < yskwo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