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은 브라질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는 당당히 4강에 올랐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욕심을 더 부리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대단한 일을 이루어냈다. 더욱이 3·4위전이 끝나자 한국과 터키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그라운드를 돌며 우정을 과시한 장면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선수들이 연출한 감동의 드라마는 그렇다고 치자.경기장과 거리에서 출렁댄 붉은악마들의 물결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열정과 질서정연함은 세계를 깜짝놀라게 한,더 없는 값진 소득이었다. 월드컵을 마무리해 보자. 첫째,우리가 이번에 거둔 성적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스포츠도 경제도 종착점 없이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다. 잠시라도 멈칫하면 뒤처진다. 우리는 지칠 줄 모르게 뛰고 또 뛰는 체력과 투지,그리고 조직력으로 4강에 올랐다. 앞으로도 그게 가능할 것인가. 국내축구 현실은 월드컵 열기와는 달리 썰렁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둘째,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이처럼 자랑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고 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마는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동안 국민들을 신명나게 할 일이 없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또 다른 스포츠에서도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야 한다. 셋째,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배우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히딩크 경영학'이라는 표현도 나타났다. 히딩크식 경영이란 선수선발 및 기용을 능력위주로 했다는 것,눈앞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강팀과 싸워 지면서도 선수들을 조련시켰다는 것,기본을 철저히 강조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평범하고 단순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건 '신뢰받는 지도자의 부재'라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고,그런 지도자가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넷째,'대∼한민국'을 외치던 열정을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뼈를 깎는 고통없이 스포츠든 경제든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세계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펼쳐야 한다. 분열과 냉소의 정치,비능률과 고비용의 경제, 불법과 무질서의 사회를 탈피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 이길 준비를 해야 하고,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다섯째,이제 흥분과 열기를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돌아가 월드컵의 감동을 각 부문에 확산시켜야 한다.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고 2006년,2010년으로 계속 이어진다. 축구가 끝나자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지만,축구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월드컵의 성과가 대선바람에 날아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88올림픽이 끝난 뒤 정치적 갈등과 노사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올림픽의 성과를 사장시킨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었다. 어제는 임시공휴일,오늘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기념하는 '국민대축제'를 갖는다. 4강 신화창조를 기리고 싶지 않은 국민은 없다. 하지만 '놀자 분위기'조성부터 하는 꼴이 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은 남는다. 열심히 뛰어야 한다.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일부에서 앞질러 토요휴무제를 실시한 것은 오프사이드,각계각층에서 분출되는 이기주의는 이른 바 할리우드 액션,우리사회에 만연한 불법·탈법행위는 경고·퇴장에 해당된다. 반칙행위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서해교전이 말해주듯 우리의 안보상황도 안심할 수 없다. 정신차려야 한다. 태극전사들은 경기장에서 지칠 줄 모르고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혹독한 지옥훈련을 견뎌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70년대 중반 한국경제가 성장가도를 질주할 때 세계는 '한국인들이 달려온다(Koreans are coming)'고 했다. 축구에서도 경제에서도 월드컵은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계속 달리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