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로댕갤러리에서 .. 한순현 <벡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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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han@suttong.co.kr
태평로 로댕 갤러리에는 '깔레의 시민'이란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다.
금방이라도 공포와 비탄의 신음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절망과 고뇌에 찬 얼굴로 굵은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인 채 어디론가 힘겹게 떠나고 있는 여섯 사내들.
극도의 불안으로 머리를 감싸고,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다가올 운명에 순종하려는 듯 굳게 입을 다문 사내들….
검푸른 청동 특유의 색과 어우러진 조각은 빛 바랜 한권의 역사서 같다.
14세기 경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 전쟁'을 치를 때 영국에 의해 점령 당한 프랑스 '깔레'라는 도시에 살았던 특별한 시민 6명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점령 당한 도시의 운명이 그렇듯 깔레시 역시 점령군 에드워드 3세의 피비린내 나는 무자비한 보복의 칼날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내가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깔레 시민들의 목숨을 보장하겠다.대신 너희들 중에 지체 높은 자 6명의 목숨을 취하겠다."
작품 '깔레의 시민'은 깔레시민 전체의 생명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자진해서 형장으로 향하는 지체 높은 6명의 희생양들을 모티브로 한 조각품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한 깔레시의 위대한 여섯 시민의 인간적 고뇌와 절망을 로댕은 10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명작으로 탄생시켰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헬기 조종사로 참전한 영국의 앤드루 왕자,전쟁이 나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싸움터로 달려가는 로마의 귀족들.
중동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앞다퉈 조국으로 달려가는 이스라엘의 유학생들.
이처럼 감당하기 힘든 일을 자신의 책무로 알고 실천에 옮긴 가진 자들의 솔선 수범이 있었기에 천년의 로마가 가능했고,왕실과 평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유럽 사회가 가능했으리라.
서울에 깔레의 영웅이 없다 해서 탄식할 필요는 없다.
청와대에 앤드루 왕자가 없다 해서 냉소할 것도 없다.
오히려 내 자신을 냉정히 뒤돌아봐야 한다.
"넌 회사의 대표로서 지금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충실하고 있는가."
너에게도 깔레시민들 만큼 소중한 너의 고객이 있고,종업원이 있고,주주가 있지 아니한가.
로댕 갤러리에서 멋진 상상을 해 본다.
소중한 그 분들을 위해 일곱번째 '깔레의 시민'이 되었으면 하는,그런 상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