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미국 이민을 준비해 왔던 P씨(31.공인회계사)는 최근 미국행을 포기하고 고국에 남기로 마음을 굳혔다.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아내 L씨(31)는 미국 본사로 전출신청까지 내놓은 터였지만 P씨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싫어서 이민을 결심했었지요. 하지만 월드컵 기간 내내 거리 응원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더군요.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일궈낸 한국 축구팀과 역동적이면서 질서정연한 '붉은 악마'를 보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P씨) 월드컵 성공이 이역만리에서 새 삶을 찾아보려던 이민자들의 발길까지 주춤거리게 하고 있다. 1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27일까지 해외 이주신고를 한 이민 희망자는 8백2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 달 평균 1천여명을 웃돌았던 월드컵 이전보다 20∼30% 가량 감소한 수치다. 각종 해외 이주 알선업체들의 이민 상담 건수도 월드컵이 시작된 6월에는 평소보다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온누리 이주공사 관계자는 "이민 상담 건수가 지난 5월 1천1백여건에서 지난달 6백여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월드컵에서 한국이 승승장구하다 보니 고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열망도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마음 이주공사 관계자도 "지난달에는 상담 건수가 평소보다 30% 이상 줄었다"며 "월드컵 열기로 이민에 대한 관심 자체가 다소 식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