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팀이 이탈리아를 꺾고 월드컵 8강 진출이 확정된 다음날인 지난달 19일. 남제주군은 눈길을 끄는 발표를 했다. 내년이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 남단에 표착한지 3백50주년인데 그 기념사업의 하나로 같은 네덜란드 출신인 거스 히딩크 감독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는 것. 국토 최남단인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 전망대에도 히딩크 감독과 코치진, 태극전사 23명의 발도장을 새긴 '월드컵 영웅판'이 세워진다. 전문가들은 월드컵대회가 우리에게 준 큰 선물의 하나로 '잘하는 사람을 칭찬해 주고 스타로 띄우는 신문화의 탄생'을 꼽는다. 전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태극전사들과 함께 뛰면서 잘하면 칭찬해 주고 실수해도 격려해 주었다. 이는 잘난 사람을 인정해 주지 않고 업적을 깎아내리는 '기성세대의 왜곡된 경쟁문화'와의 '결별신호'이기도 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귀에 익은 기성세대에는 히딩크 동상을 세우고 거리에서 마음껏 축제를 즐기는 발상과 행동을 기대할 수 없었다"면서 "이는 W세대(월드컵세대;15~25세 붉은악마 주력)의 등장으로 한국인의 원형질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길조"라고 분석했다. 이제 월드컵을 통해 신세대가 일궈낸 '신화'를 '생활화'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김일섭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국민들은 그토록 목말라했던 탁월한 리더십을 히딩크에게서 보고 즐길 수 있었다"면서 "어떤 조직이든 성공하려면 훌륭한 리더를 만나야 하며 조직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선택된 리더를 끝까지 따라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외국인이라도 잘하면 우리의 영웅으로 대접할 수 있다는 '정서'는 예전엔 보지 못했던 '감동의 문화'"라면서 "이는 한국경제나 사회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