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올해 언론에서 가장 많이 다룬 금융상품은 아마도 신용카드일 것이다. 우선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이 문제가 되었고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됨에 따라 각종 사회문제들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남용하는 절제력 없는 소비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하고 신용카드 회사의 비도덕적인 마케팅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 수단의 하나에 불과한 신용카드가 우리의 소비와 금융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인 파장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심도 있는 분석을 접해본 적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공백을 미국 신용카드 역사의 분석을 통해 채울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그 간접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신용카드 제국'(로버트 매닝 지음,강남규 옮김,참솔,1만8천9백원)이라는 책이다. 일관된 시각에서 신용카드 문제를 분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과의 인터뷰 내용과 풍부한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우선 미국의 정부 기업 가계가 안고 있는 부채의 상태를 거시적인 측면에서 분석한다. 이어서 미국 금융기관들이 소비자 금융시장에 집중하게 된 배경과 신용카드 시장의 급성장을 씨티그룹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신용카드 회사들의 마케팅 전술이 근검과 저축을 미덕으로 여기던 사회 통념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때로는 지루하리 만큼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신용카드의 과도한 사용에 따라 대부분 불행한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 일반 시민들의 고통에 찬 인생이다. 그리고 이 책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관심을 끌지 못했던 신용카드와 관련된 문제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이자를 절대 물지 않으면서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비교적 고소득층 사람들과 높은 연체율까지 부담해야 하는 비교적 저소득층 사람들간의 부의 이전 문제라든가 신용카드 부채의 증가가 단지 이용자의 낭비벽 때문이 아니라 소득의 불평등 확대,줄어든 복지혜택 등의 사회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신용카드 이용 확산의 원인과 배경,파급효과에 대한 분석에 집중하고 있어서 정책적 대안을 찾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직접적인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신용카드 회사에 대해 비판적이며 신용카드 이용자를 '중독'되고 '과중 채무의 덫'에 빠지게 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신용카드 이용의 긍정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있는 문제점도 있다. 이건범·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