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huy91@hanmail.net 고백하건대 지난 월드컵 때 나는 우리 팀의 경기만 두 차례 보았다. 폴란드와 경기할 때는 얼결에 관전을 시작했다 끝까지 봤고,이탈리아전 때는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하고 어우러져 공동관람을 했다. 두 번 다 완전히 미쳤었다. 그 몰두와 그 간절함과 그 열광이라니. 나머지는 안보거나 못 보았다. 우리 팀이 지고 있거나 팽팽한 접전을 벌일 때의 긴장을 견뎌낼 힘이 없어서였다. 마지막 터키와의 경기 때도 시작한지 20여초만에 TV를 껐다. 이번에는 보겠다는 마음을 채 굳히기도 전에 우리 진영으로 골이 들어가는 것을 본 직후였다. 덕분에 마음 약한 어미와 그 어미 닮아 마음 약한 아이한테 나머지 시간들은 참 곤욕이었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텔레비전을 주로 끄고 살았지만 윗집 아랫집 건넛집에서 번갈아가며 들려오는 탄식과 환호성까지 끌 수는 없지 않은가. 16강만을 기원했다가 4강에 이른 그 뜨거운 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게 되었다. 독일과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두어 시간 있으면 경기가 벌어질 참이라 치과는 한산했지만 텔레비전은 빨갛게 달아 있었다. 지레 온갖 엄살을 부리던 아이가 제 차례가 되자 별수없이 진료대로 가서 누웠다. 나는 치과를 벗어나 복도로 나왔다. 아이의 비명을 듣고 있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나와서 멀리 가지도 못하고 복도를 서성이던 중에 내가 늘 그래왔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아이가 성장통이나 감기,충치를 앓아 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언제나 치료과정을 주시하지 못한 채 딱 그만큼씩 도망쳐왔던 것이다. 그리곤 치료가 끝난 다음에야 의사 앞에 가 어디가 왜 아팠으며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자못 심각하게 묻곤 했다. 그날,태어난 지 10년 9개월 된 내 아이는 썩어서 흔들리던 유치 한 개를 치과를 뒤집으며 뽑았고 영구치 네 개를 치료한 뒤 땜질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모자는 화가 난 채 손을 잡고 집에 돌아왔는데 여전히 겁쟁이들인지라 텔레비전은 못 켰다. 그래도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결과는 알았다. 안 보길 잘했지 엄마? 경기 내내 만화책을 뒤적였던 아이가 속상한 듯이 말하고 영화 잡지를 건성으로 넘겼던 어미는,그래도 4강까지 간 게 얼마나 대단하냐고 정말 자랑스럽지 않냐고 교육적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안 보길 진짜 잘했다 싶었다. 경기를 정면으로 안 봤음에도 정말이지 한참동안이나 아무 것도 하기 싫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