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를 '新문화로...'] (6) '여유로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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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4강전.한국팀은 0-1로 독일에 패배했다.
붉은 악마들은 패배에도 아랑곳없이 '대∼한민국'을 외쳤고 새벽까지 거리를 누비며 축제를 즐겼다.
그날 서울 시청앞에는 응원군중이 아침일찍부터 몰렸고 낮시간 내내 응원을 즐긴다음 저녁에 전광판을 통해 경기를 구경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여유'와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맛보았다.
우리팀을 이긴 상대팀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축하해 주는 모습은 세계를 감동시켰고 월드컵 축제를 한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승패에 관계없이 경기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여유로운 관전문화'는 월드컵의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음악회장에서 공연이 끝나면 커튼콜도 하지 않고 뒷문으로 먼저 빠져 나가려 다투거나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크레디트 자막이 올라가는 것도 보지 않고 앞다퉈 밖으로 나오는 기존의 관전문화와는 딴판이었다.
이 상무는 "기다릴 줄 알고 여유를 갖는 생활태도는 삶의 양적 팽창보다 질적 풍요에 무게를 두는 선진국의 기본 요건"이라면서 "이런 신선한 충격이 문화로 뿌리내리게 사회시스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일과성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월드컵 기간중 한국인이 여유로운 관전태도를 보인 것은 우리 고유의 '손님접대 문화'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언론이 '6월 한달간은 월드컵 이외에 그 어떤 것에도 신경쓰지 말자'고 암묵적으로 설정해 놓은 틀안에서 손님이 오면 평소와 달리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따지는 한국인의 '접객성향'까지 더해졌기에 가능했다는 것.
조병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인은 어떤 일에 열성을 보이다가도 그 일이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방 잊어버린다"며 "월드컵을 계기로 질서있고 여유로운 문화가 정착되도록 공중화장실 앞에 줄서는 팻말을 만드는 작은 시스템혁신부터 하나씩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