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겐 뢰플러 <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 사장 > 많은 기업가들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여기에 수긍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보수주의'가 반드시 양립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력'이라는 힘이 기존의 습관과 구조를 깨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유시장 체제는 매우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되는 이러한 '창조적인 파괴'는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기업가는 기존의 사업운영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기업가는 새로운 시장과 상품 그리고 혁신적인 경영방식을 찾는 자로서 자신의 동물적인 직관을 믿으며 위험을 감수한다. 기업가는 소심하고 겁 많은 다른 사람들이 기회를 놓칠 때 그 기회를 잡는 자'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인가. 미국 기술주의 거품이 걷히고,많은 인터넷과 IT기업들이 부도나며,엔론사와 같은 사건들은 이같은 정의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훌륭하고 존경 받는 많은 기업가들이 맨손으로 시작하여 '대제국'을 세우긴 했지만,얼마 뒤 '사상누각'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한강의 기적에 기여했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일부 재벌만 보아도 알 수 있다. 30대 재벌 중 절반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도 나거나,워크아웃 되거나,재벌구조를 해체해야만 했다. 실증분석 결과에 의하면 각 기업의 수명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짧다. 전형적인 다국적기업의 '평균 수명'은 40년에서 50년 사이다. 여기서 평균 수명은 부도,파산,합병 또는 도산으로 기업이 소멸되기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유럽계나 일본계 기업의 수명은 13년 미만이다. 이는 놀라울 정도로 짧지만,대다수 창업기업들의 경우는 몇년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장이 적자생존방식에 의해 유지 발전하고,한계기업은 지속적으로 퇴출된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5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 기업들은 재정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있고,지나치게 야심적인 프로젝트나 전략으로 인한 과도한 부채비율과 재무적 부담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면서 확고한 기업문화와 정체성을 지켜나간다는 점이다. 그들은 또 확립된 전통에 기초를 둔 견고한 기반을 만들며 보수주의를 잘 이용할 줄 안다. 동시에 장수기업들은 화석화하지 않고 변화를 수용한다. 그리고 연구 인력들에 의해 제안된 혁신적인 상품 아이디어를 조직내에서 받아들임으로써 이러한 변화를 성취해 간다. 즉 보수적이고 리스크를 통제하는 동시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정도로 대담한 성향을 지니는 것이 자유경쟁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다. 양면을 겸비할 줄 아는 기업가가 드물기는 하지만,생존한 기업가들조차도 평생토록 이러한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창업자나 창업자 가족의 상당한 주식소유는 기업의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증분석 결과는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신생기업에 국한된 것이지,오래 존속된 기업의 경우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고령의 창업자가 그 회사 경영에 손을 떼면 주가가 급등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나 실물경제의 흥망성쇠를 보더라도 '인간은 역시 너무 보수적이고 비관적'이거나,'너무 사려 깊지 못하고 낙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즈니스의 근본적인 문제는 최신 기술이나 경영방식을 좇아가느냐의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인간의 본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수천년이면 모르겠지만 수백년 정도로는 그리 변하지 않으며,바로 그런 점에서 흥망성쇠는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경제위기나 기업 스캔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 어려운 시대를 뚫고 살아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건전한 보수적 관점과 태도' 그것이 아닐까.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