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9개월 만에 1천1백90원대로 주저 앉았다. 정부가 지난 주까지 지켰던 1천2백원선은 8일 개장초부터 속절없이 무너졌다.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이 원화 환율의 추가적인 하락을 예고하고 있어 정부 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은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환율하락으로 득을 보는 업종과 손해를 보는 업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은 수출에 비상이 걸려 아우성인 반면 원자재 수입비중이 높거나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은 오히려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는 양상이다. ◆ 대외 변수가 원인 =이날 원화 환율 하락의 시발점은 시오카와 마사주로 일본 재무상의 '입'이었다. 지난 6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재무장관 회담이 끝난 뒤 시오카와 재무상은 "엔화 환율이 달러당 1백15엔까지 내려앉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8일 도쿄시장에선 엔화 환율이 전날(5일 1백20.48엔)보다 1.71엔이나 급락하면서 원화환율도 함께 끌어내렸다. 여기에다 미국 제약회사 머크의 사상 최대 규모 분식회계(1백24억달러) 의혹은 달러 약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이로 인해 나스닥 선물가격이 고꾸라지면서 가뜩이나 약세 심리에 놓인 달러화 가치가 전세계적으로 동반 하락했다. ◆ 국내 증시와 수출도 한몫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들이 3천2백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최근 사흘간 외국인 주식 순매수 규모는 거래소와 코스닥을 합쳐 6천9백억원대에 이른다. 순매수 결제금액은 2∼3일뒤 달러 매물로 나와 환율을 더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환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수출은 지속적으로 호조여서 달러 공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외환전문가들은 '환율 하락은 어쩔 수 없는 대세'라는데 공감하고 있다. 이진우 농협선물 부장은 "국내외 어디를 찾아봐도 환율을 끌어 올릴 요인을 발견할 수 없는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 정부도 손놨다 =환율이 오전부터 급락세를 보이자 재정경제부는 '환율 급락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구두개입에 나섰다. 그러나 추락하는 환율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중 국책은행을 통해 약 1억5천만달러를 시장에서 사들였지만 엔.달러 환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원화 환율만 지지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일본도 엔화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2백억달러 이상을 사들인 것 같다"고 밝혔다. 노상칠 국민은행 딜러는 "시장에서는 재경부나 한국은행의 구두개입만으로는 환율 하락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대신 일본은행의 개입 시점이 1백15엔이냐, 1백16엔이냐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