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태국은 5년 전 바트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이것이 아시아 경제위기의 시발점이었다. 그 당시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는 위기의 진원지가 불확실했다. 결국 동아시아의 가장 성공적인 개발도상국들이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아시아의 '장밋빛 경제'도 산산조각났다. 신흥시장과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신뢰도도 땅에 떨어졌다. 5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 경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훌륭하다(Good)'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 직후부터 이미 회복기미를 보였다. 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98년 10% 이상 하락했으나 이듬해 4% 성장했다. 한국의 산업생산량은 위기 첫 해 7% 떨어졌지만 이후 12개월간 11% 늘었다. 결과적으로 이 지역 경제 대부분이 3년 이상 성장해온 셈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놀랍다. 지난해 산업생산량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약 25% 급증했다.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유입되고 있다. FDI는 일반적으로 외환위기의 전조로 인식되는 단기부채보다 훨씬 안전하다. 지난 10년간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바로 "휩쓸리지 말라(Don't get carried away)"는 것이다. 경제기적은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경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교훈은 환율에 관한 것이다. 아시아의 외환위기는 고정환율제(페그)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특히 국내 금융체계가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 자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 더욱 위험하다는 점을 알려줬다. 당시 아시아 일부 국가의 고정환율제 붕괴는 새로운 통념을 낳았다. 국가는 통화를 시장에 방치하거나 완전히 고정시키는 방법 중 택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은 없다. 갈수록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아르헨티나는 페소화를 달러에 고정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다 더욱 큰 위기를 불러온 사례다. 하지만 어떤 환율제를 쓰든간에 위기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경제는 상당히 '혼합적(Mixed)'이다. 각국마다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다르며 환경도 차이가 난다. 이같은 점에서 볼 때 앞으로 동아시아 경제에 닥칠 가장 큰 위험은 '한국 따라하기'가 될 것 같다. 지역경제의 최우등생인 한국을 무비판적인 본보기로 삼으면 큰 코 다칠 수 있다. 한국의 경제회복은 수출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부분적일 뿐이다. 내수증가가 더욱 커다란 기여를 했다. 태국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재정을 동원해 소비를 진작시킴으로써 이 점을 흉내내려 하고 있으나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재정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한국의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성장 정책은 기본적으로 금융산업의 철저한 개혁과 구조조정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 정부들이 그동안 꽁무니를 빼온 부분이다. 한국의 이웃국가들은 부실채권 문제는 그대로 놔둔 채 내수경제를 직접 부양하려고 한다. 부실채권을 먼저 해결하지 않고는 대출신장과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이들 나라는 또 한국보다 훨씬 덜 발달됐기 때문에 한국이 누리는 내수 주도의 고성장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7월4일자)에서 보도한 'Five years on'이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