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이틀 내리 급락세를 보이며 20개월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전날 달러/엔 환율 하락을 반영, 1,200원을 붕괴시킨데 이어 압도적인 공급우위를 바탕으로 손쉽게 1,190원도 하향 돌파했다. 전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 영향권에 편입된 가운데 외국인 주식자금, 역외매도 등 물량 압박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들의 외화예금까지 나오며 시장의 달러팔자 심리가 극심함을 보여줬다. 이기호 경제복지노동특보의 환율 하락 용인 시사 발언이 시장 매도심리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정부는 환율 급락세를 막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에 나설 것을 발표했으나 반등력은 미약했다. 이의 향후 효과에 대해서도 시장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달러/엔 환율은 118엔대에서 추가 하락이 '일단 멈춤'한 채 소폭 오름세를 유지, 엔/원 환율은 100엔당 1,000원 밑으로 내려섰다. 환율 하락은 '어찌할 수 없는' 대세라는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섣불리 '지지선' 여부를 점칠 수 없는 분위기다. 대내외적으로 환율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만 득실거릴 뿐 달러 수요요인을 찾아볼 수 없어 1,170원대로의 진입도 충분히 예상가능한 대목이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9.20원 내린 1,182.20원에 마감, 종가기준으로 지난 2000년 11월 22일 1,176.90원 이래 최저치를 가리켰다. 이번주 들어 이틀새 22.70원이 하락했다. 장중 고점은 개장가인 1,191.30원, 저점은 1,181.90원으로 지난 2000년 11월 28일 장중 1,181.70원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루 환율변동폭은 9.40원을 가리켰다. ◆ 1,170원대 가시권 = 이틀새 차례로 1,200원, 1,190원을 뚫고 1,180원대 초반까지 미끄러진 환율은 1,170원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주식순매수 자금에 이어 이 특보 발언으로 역외매도가 촉발되는 등 물량이 계속 공급됐다"며 "과도한 감은 있으나 방향이 맞고 모멘텀도 계속 아래쪽으로만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업체들이 환율이 속절없이 내리니까 계속 팔자에 나서고 있으며 외국인 주식자금 공급을 예정한 세력들도 부담 때문에 더 팔았던 것 같다"며 "내일은 일단 외평채가 입찰되고 대책회의 등으로 급락하지는 않고 1,180원을 테스트하면서 1,178원 정도까지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물량 공급이 압도했으며 원-엔의 '10 대 1' 비율이 깨졌음에도 정부가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개입 여력도 강하지 않을 것 같다"며 "밤새 달러/엔의 동향이 중요하며 전 저점인 118.40엔이 뚫리면 1,170원대가 주무대로, 그렇지 않으면 1,180원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특히 "외평채 발행의 경우 좀 더 지켜볼 여지가 있는 것이 지난주 4억달러 가량 매수한 데 대한 후행성 발행 가능성도 있다"며 "달러화를 살 수 있는 원화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고 추가 개입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정부 내 엇갈린 입장 = 이기호 특보는 이날 힐튼호텔에서 가진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환율문제는 시장 원리에 맡기고 정부는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원화의 절상속도는 유로화나 엔화와 비슷한 수준으로 본다"고 언급, 전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에 의한 원화 강세를 용인할 것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는 원론적 발언이며 최근 시장동향상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마련은 당연한 입장임을 강조했다. 한 시장 관계자는 "1,200원이 깨지는 데도 한국은행의 발언이 한몫했듯 오늘 이 특보가 원론적인 얘기를 했다지만 달러 매도를 자극했다"며 "시장 관련 발언을 시장 전체를 관장하는 사람으로 단일화해 혼선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오후장 막판 재경부는 최근 환율 급락세를 막기 위해 수요일 외평채 5년물 5,000억원을 입찰, 12일 이를 발행하고 당초 22일로 예정된 외평채 5년물 발행분 7,000억원도 그대로 유효하며 이달내 추가 발행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 매물 압박 심화, 달러/엔 정체 = 시장은 온통 달러팔자 일색이었다. 오전중 지난주 금요일 주식순매수자금이 1억달러 이상 나왔으며 이기호 특보의 발언이후 역외매도세와 업체들의 물량공급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일부에서는 수요일 외국인 순매수분을 고려, 미리 달러팔자에 가담키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이기호 특보 발언으로 정부 개입에 의한 반등 기대감이 줄어들면서 업체들이 보유달러를 적극 내놨다"며 "환율이 빠질 때 네고가 더욱 강해지고 적정 외화예금이 60∼70억달러 수준임을 고려하면 50∼60억달러가 잠재적 물량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악성매물 출회가 가속화되면 환율 하락속도가 더욱 가팔라 질 가능성을 제시한 것. 국내 증시의 외국인은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338억원, 4억원의 매도우위를 기록했다. 나흘만에 주식순매도로 돌아섰으나 환율과는 무관했으며 지난 월요일의 순매수자금 3,222억원 중 일부가 수요일 달러공급요인으로 작용, 하락 압박을 가할 전망이다. 달러/엔 환율은 전날 뉴욕에서 증시 하락, 머크사 회계부정 의혹 등으로 하락세를 보이며 118.42엔을 기록한 뒤 이날 소폭 오름세를 유지했다. 시오카와 일본 재무상이 지난 토요일 "달러/엔이 115엔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한 해명과 일본 정부 관료의 구두개입이 반복됐음에도 반등력은 미약했다. 달러/엔은 도쿄장 초반 119엔대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수출업체 매물에 되밀려 대체로 118.60∼118.70엔대에서 정체된 흐름을 보였으며 오후 5시 26분 현재 118.50엔을 기록중이다. 엔/원 환율은 상대적으로 원화 강세 속도가 엔화보다 빨라 100엔당 1,000원을 하회, 같은 시각 997원선을 가리키고 있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지표 = 전날보다 0.10원 낮은 1,191.30원에 출발한 환율은 이내 1,189.50원까지 떨어진 뒤 한동안 1,190.00원을 축으로 상하 시소했다. 이후 환율은 공급 우위를 바탕으로 차츰 레벨을 낮춰 11시 15분경 1,185.40원까지 떨어진 뒤 소폭 반등, 대체로 1,186원선을 거닐다가 1,186.50원에 오전장을 마쳤다. 오전 마감가보다 0.30원 낮은 1,186.20원에 거래를 재개한 환율은 개장직후 1,185.50원까지 내려선 뒤 이내 저가매수로 1시 34분경 1,186.90원까지 되튀었다. 그러나 차츰 매물 압박에 되밀려 3시 16분경 이날 저점인 1,181.90원까지 흘러내린 뒤 재경부의 외평채 입찰 소식으로 4시 23분경 1,183.50원까지 반등했다가 이내 되밀렸다. 이날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14억94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10억1,840만달러를 기록했으며 스왑은 각각 1억3,500만달러, 3억1,330만달러가 거래됐다. 10일 기준환율은 1,186.30원으로 고시된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