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98년부터 추진해온 한국과 칠레간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FTA)과 한.미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BIT)이 '침몰' 위기속에서 장기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칠레와의 FTA 협상은 사과 배 등 농산물을 제외하라는 농민의 요구에 밀려 한국 정부가 협상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칠레 정부는 "그런 식이면 FTA 협상은 왜 하느냐"고 맞서 논의 자체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미국과의 BIT 체결은 스크린쿼터(국산 영화 의무상영 일수) 축소에 반대하는 국내 영화계의 반발에 부딪쳐 더이상 진척되지 않고 있다. ◆ 농산물 덫에 걸린 FTA 98년 11월 양국 대통령간 합의에 의해 시작된 한.칠레간 FTA 협상은 '농민보호'라는 '성역'에 밀려 좌초 상태다. FTA란 상품은 물론 서비스를 사고 파는데 관세를 비롯한 모든 무역장벽을 없애는 것. 한국 정부는 칠레의 산업이 구리 원목 등 원자재 위주여서 국내 산업에 큰 문제가 없다고 봤다. 칠레산 농산물도 포도 키위 사과 등 과실류가 주종이기 때문에 피해가 적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국내 농민들이 즉각 반발했다. 칠레산 과일이 국내에 반입되면 국내 농가의 타격이 너무 클 것이라는게 이유였다. 결국 정부는 지난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칠레 FTA 고위급 회의에서 사과와 배를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6차 양허안을 칠레 정부에 전달했다. 포도 수확기에는 현행 관세를 그대로 적용하자는 계절 관세 부과방안도 제안했으나 칠레 정부가 이같은 수정 제안을 거부해 후속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 스크린쿼터에 막힌 한.미 BIT 정부는 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한.미간 BIT 체결을 추진해 왔다. BIT란 한국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투자관련 제도를 고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겠다는 약속이다. BIT가 체결되면 원칙적으로 외국기업이나 외국인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해 줘야 한다.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었던 한.미 BIT에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돌연 복병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스크린쿼터를 제외시키고 한.미 BIT를 체결하자고 제의했으나 미국이 거절했다. ◆ 대외협상이 내부문제로 전환 한?미 BIT와 한.칠레간 FTA는 모두 한국 정부가 먼저 협상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 내부의 반발로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볼썽사나운 꼴이 되고 말았다. 정부는 협상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유권자의 반발을 사는 정책을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내부 반발과 선거일정 등으로 올해 안에 협상을 타결하는 것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얘기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