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호 태풍 '라마순'이 한반도를 통과했던 지난 6일 아침 전남 해남군의 두륜산 대둔사 청운당.제주산 갈천으로 만든 수련복을 입은 20여명이 다구(茶具)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새벽 예불과 참선,숲길 산책에 이어 아침 공양(식사)을 마친 뒤 스님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이들은 대둔사가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맞춰 상설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주말 산사수련회 '새벽숲길'의 참가자들.엄마와 함께 온 어린이로부터 대학생 직장인 대학교수 등 직업이 다양하다.


자리를 주재한 법인 스님(대둔사 수련원장)과 교무 소임을 맡은 한북 스님이 익숙한 솜씨로 차를 우려내 한 잔씩 돌리고 나자 법인 스님이 말문을 열었다.


"한국 차는 소리 내지 않고 몇 번에 걸쳐 마시되 혀끝에서 굴려야 제맛을 느낄 수 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다반사(茶飯事)라 해서 차를 마시는 것이 밥먹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이었다고 해요.


이곳 대둔사는 약 2백50년전 초의선사가 일지암을 짓고 차를 재배하며 차문화를 집대성한 차의 성지입니다.


우리나라 차에 대한 내용을 시 형식으로 만든 다신전(茶神傳)과 동다송(東茶誦)도 여기에서 지었지요."


법인 스님이 한시간 가량 차의 유래와 역사,차 이름,만드는 법,차를 매개로 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간의 인간적인 교유 등에 관해 설명하는 동안 수련생들은 차를 마시며 산사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다.


다음 코스는 자유정진 시간.수련생들은 각자 흩어졌다.


산책을 하든 책을 읽든 참선이나 명상을 하든 자유롭기 때문이다.


참선이나 명상을 위해 꼭 결가부좌를 하지 않아도 된다.


눕지만 않으면 다리를 뻗거나 벽에 기대거나 상관없다.


법인 스님은 "형식에 구애받기보다는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비춰보라"고 했다.


점심 공양에 이은 오후 일정도 자유롭기는 마찬가지다.


'등산파'는 법인 스님과 함께 일지암과 북암으로 산행을 다녀왔고 나머지는 오전처럼 독서 기도 좌선 산책 등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둔사 '새벽숲길' 수련회의 특징은 이처럼 자유롭다는 것.빡빡한 일정의 참선수련회와 달리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게 하자는 배려다.


때문에 전체 일정 가운데 새벽 및 저녁예불과 공양,1백8배,좌선,새벽 숲길 산책,수행일기 쓰기만 엄수하면 나머지는 각자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


전체 일정도 1박2일이나 2박3일 중에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비난과 논쟁,정치·연예 등 세속 잡사 이야기는 금물이다.


'새벽숲길'은 이제 2회째인데 벌써부터 인기가 높다.


지난달 14일 열렸던 1회 수련회는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16강전이 열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12명이 참가했고 7월 셋째주와 8월 첫째 주말의 수련회는 이미 50여명씩 신청,접수 마감됐다.


참가자 가운데에는 불교신자 외에 무종교 혹은 천주교 신자도 적지 않다.


정해진 참가비는 없으며 수련회가 끝난 뒤 나름대로 '성의'를 표하면 된다.


2회 수련회에 참가했던 박정희씨(28·여)는 "대둔사에서의 여유로움과 한가로움은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지내온 내게 정말 귀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 천주교 신자인 방만원씨(51)는 "새벽 산책길이 참으로 좋았다"고 했다.


대둔사(해남)=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