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마술 '삼척 환선굴'] 어둠속 또 하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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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부터 초월한 '혼돈의 공간'.
그 육중한 어둠속에 숨쉬는 또 하나의 세계.
동굴로 향한다.
섣부른 기교를 거부한 채 시간과 물흐름에 순응, 차곡차곡 느리게 쌓아 올린 자연 그대로의 신비를 마주한다.
환선굴(幻仙窟)을 찾는다.
환선굴은 55개의 동굴을 헤아리는 삼척에서도 관음굴, 제암풍혈, 양터목세굴, 덕밭세굴, 큰재세굴을 포함해 6개 동굴이 모여 있는 대이동굴지대(천연기념물 178호)의 중심축이다.
해발 8백20m 지점의 산중턱에 자리한 동양최대(총연장 6.2km) 석회동굴로서의 위용을 자랑한다.
7번국도에서 38번국도로 갈아타고 표지판을 따라 신기에서 대이리방면 외길로 접어든다.
주차장에서 환선굴 입구까지는 30분.
97년 개방 이후 4백만명이 다녀간 곳이어서인지 가파른 안내로가 잘 다듬어져 있다.
안내로 가의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 옛 화전민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민속자료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태백산 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덕항산을 비롯 물미산 지각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어머니의 뱃속이라 표현한들 이상할 것이 없는 지세'라고 했던가.
멀리 불끈 솟은 촛대바위를 놓고 풀어낸 최창조씨의 이 지역 풍수해설이 재미있다.
'...좆대봉(좆대배이)이 바른 이름일 것이다. 원초적 생산을 행하기 위해 삽입된 아버님의 발기한 양물일게 분명한 이 좆대봉으로 말미암아 골말은 한점 의심의 여지없이 자궁 속이 되는 것이고 티끌만한 불안도 있을수 없는 터전이 될 수 있었던 것...'
예닐곱 걸음 길이의 신선교를 딛자 온몸 축축한 땀이 싹 들어갈 정도로 오싹하다.
바로 오른편 선녀폭포에서 일어난 물안개가 다리를 쓸고 지나간다.
속세와 불계의 경계를 상징하는 일주문을 넘어선 듯 잡생각이 가신다.
열걸음 정도 앞은 잠시 숨을 돌리는 공터.
여기서부터 철계단이 놓여 있다.
그 철계단으로 15분.
환선굴 입구다.
그 크기에 놀란다.
고속도로 터널 입구의 두배는 돼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속으로부터 뿜어내는 찬기운이 두렵기까지 하다.
도중에 들렸던 천곡동굴과 달리 안전모는 필요없다.
철구조물로 된 탐방로를 따라 천천히 굴속으로 들어간다.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제1폭포가 다가선다.
벽면의 동그랗게 뚫린 구멍으로 굵은 물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초록 노랑 조명을 반사하는 물빛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다섯개의 연꽃을 연상시키는 오련폭포, 종유석의 초기 생성과정을 볼 수 있는 팝콘형태의 삼라만상, 폭포줄기 같은 유석이 펼쳐진 꿈의 궁전을 지나 희망봉에 오른다.
거대 종유석인 도깨비방망이쪽 아래에 오색 꼬마전구로 만든 한반도 윤곽이 보인다.
영상 11도.
어느새 땀이 들어가 있다.
다시 탐방로를 따라 내려간다.
중세 수도승 머리모양을 연상시키는 대머리형 석순에 웃음이 터진다.
사랑의 다리 위 천정에 하트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사랑의 맹세를 하는 곳이란다.
황색조명빛을 반사해 꿈속을 연상시키는 생명의 샘을 거쳐 지옥계곡으로 접어든다.
출렁다리로 된 지옥교 옆의 오백나한이 악마의 발톱을 누그러뜨린다.
연이어진 참회의 다리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지난일을 되돌아보게 된다.
천정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로 인해 거대한 종유석으로 커질 옥좌대가 당당하다.
구부려 앉아야 보이는 작은 성모상이 꽤 높은 제2폭포의 물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이어지는 탐방로의 용식동굴천정이 깊다.
위쪽으로 향한 화살표 방향이 있다는 관음상은 아무리 살펴도 찾을수 없어 아쉽다.
그리고 만리장성.
진짜 만리장성을 축소해 놓은 형태가 신기하다.
나오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스님.
동자상이 환선굴이란 이름의 유래를 들려준다.
옛날 도를 닦기 위해 이 굴로 들어간 스님이 되돌아 나온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스님이 신선이 되었다고 믿었고, 이 굴을 환선굴이라 했다는 것.
그 자리가 바로 스님이 기거하며 도를 닦았던 곳이라고 한다.
입구쪽으로 쏜살 같이 빠져 나가는 물안개와 보조를 맞춘다.
억겁의 세월동안 감춰졌던 또다른 세계와의 만남.
처음 대했을 때의 그 설레임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삼척=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