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자금 개선 10대 제안 - (1) '음성적 정치자금 없애자' ]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1992년 대선에서 2조원이 넘는 돈이 뿌려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97년 대선의 선거자금에 대해서는 92년도와 같이 구체적인 수치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유사한 규모의 돈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7년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된 각 정당의 총수입이 2천3백억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1조원 이상의 음성자금이 동원되었음을 의미한다. 국회의원선거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 신문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16대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평균 5억원을 사용했다는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출마자가 후원회를 통해 모금할 수 있는 상한액이 3억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보당 적어도 2억원 정도는 음성자금을 마련한 셈이다. 전국의 출마자가 음성적으로 조달한 자금을 모두 합치면 1조원 이상의 음성자금이 뿌려졌다고 볼 수 있다. 지구당 운영경비와 공식적으로는 정치자금의 모금이 허용되지 않는 지방선거를 감안하면 한국정치에 있어 음성자금의 규모는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대규모의 음성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있는가. 그동안 단편적으로 밝혀진 사실들을 짜맞춰 보면 민주화 이후 음성자금의 조달구조가 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민주화 이전에는 음성자금을 통치자가 통치자금이라는 명목아래 직접 조성해 이를 대선자금은 물론 국회의원 선거비용, 중앙당 및 지구당 운영비용으로 사용했다. 나아가서는 야당에까지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치자가 자금을 마련하는 수단은 통치자금이라는 명목으로 각종 예산 속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었으며, 5공비리 청문회,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 등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대기업으로부터 비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하면서 정치자금조달의 구조가 급격하게 변했다. 다음 대선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진 대통령은 직접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일을 중지하게 된다. 또 국가 예산이 보다 투명해져 국가기관에 이른바 통치자금으로 쓰일 막대한 예산을 숨겨두는 일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됐다. 대기업의 회계 역시 보다 투명해짐에 따라 과거와 같이 수백억원대의 돈을 대기업에서 조달하기 힘들게 됐다. 이에 따라 소위 힘센 국가기관의 관료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돈과 권력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대선에서의 국세청을 이용한 대선자금조성 의혹, 4.13 총선에서의 안기부를 이용한 선거자금 조성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 액수는 과거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적은 규모다. 이로 인해 자연히 후보 개인이 음성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로 과거에 비해 사건당 불법자금의 액수는 줄어들었다. 반면 불법자금을 받는 사례는 급증해 부패가 더욱 만연한 것으로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즈 액커맨의 주장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치자금은 민주화될수록 소수의 권력 독점자가 소수의 대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마련하던 쌍방독점형에서 다수의 하위직이 다수의 공여자로부터 음성자금을 받는 경쟁적 부패구조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한국경제신문 공동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