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의 월드컵 3,4위전이 열린 지난달 29일 대구 경기장. 전반 시작 휘슬과 함께 한국팀이 한골을 내주면서 경기는 급속도로 터키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9분후 이을용(부천 SK)이 그림같은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왔고 붉은악마들은 '이을용'을 소리높여 불렀다. 월드컵 전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을용이 국제무대에 '스타'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이을용은 선수를 선발하는데 있어 지연 학연 연공서열 등 '실력' 외적인 요인을 무시한 '히딩크식 인사'가 낳은 대표적인 성공작. 대표선수 대부분이 화려한 고교시절을 거쳐 유명 대학이나 프로구단에 스카우트됐던 것과 달리 이을용은 고교 졸업 후 실업무대(한국철도)로 향했다. 그러나 이을용의 잠재력과 성실성을 눈여겨본 히딩크 감독은 그를 대표팀에 발탁했고 이을용은 '1골-2어시스트'의 빛나는 성적으로 보답했다. 골키퍼 이운재도 비슷한 케이스. 월드컵 전만 해도 그는 김병지에 비해 경력이나 명성에서 크게 뒤떨어져 한동안 '무명'의 서러움을 맛봐야 했다. 그러나 히딩크는 이운재의 기량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한국팀의 골문을 맡겼고 결국 이운재는 '4강 신화'의 일등공신이 됐다. 히딩크 감독은 '연고주의'와 '선입견'이 판치는 한국사회에 '합리성'과 '개방성'이 가져다 주는 효용이 얼마나 큰지를 가르쳐 줬다. 개개인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되기 위해서는 학연 지연 연공서열 등 한국인 특유의 '정(情)'이 배제돼야 한다는 것을 결과를 통해 보여줬다는 얘기다. 배영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히딩크가 남긴 교훈은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는 것"이라며 "실력에 따라 인재를 배치한다는 원칙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히딩크처럼 몸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참 참스마트 대표는 학연.지연 타파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이제 한국인은 폐쇄주의를 떨쳐버릴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4강 신화는 리더십과 선진 시스템으로 무장된 히딩크를 영입한데 힘입었다"며 "세계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우수한 인력과 효율적인 시스템을 찾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