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간(竹簡)은 종이가 나오기 전 중국에서 쓰인 기록매체다. 대나무를 세로로 쪼갠 것으로 길이는 20∼25㎝이지만 폭이 좁아 여러 개를 가죽이나 비단 끈으로 이어 사용했는 데 이렇게 엮은(編綴) 걸 책(策ㆍ冊)이라고 불렀다. 전국시대부터 진(秦) 한(漢) 때까지 나무쪽(木牘)과 함께 널리 썼는데 이 때문에 BC 5세기∼AD 2세기를 간독시대(簡牘時代)라고도 한다. 죽간에서 비롯된 말이나 도구도 많다. '대책(對策)'이나 도장도 그중 하나다. 대책은 원래 한나라에서 관리를 뽑는 시험을 뜻하던 말이었으나 '책(策·죽간을 묶어 만든 시험지)을 대(對)하고' 앉은 수험생들이 온갖 궁리를 한 데서 '대응하는 방책'이라는 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도장 역시 공문서를 보낼 때 죽간을 진흙으로 싸면서 혹시 뜯어볼까 봐 흙이 마르기 전 부호를 새겨 찍은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1901년 서북부 신장성(新疆省)에서 한나라 때 것이 처음 발견됐고 51년 후난성(湖南省)에서 전국시대 것도 나왔다. 96년 많은 죽간이 발견된 후난성에서 다시 진나라(BC 221∼207) 때 죽간이 2만점이나 출토됐다는 소식이다. 죽간엔 2천여년전 중국의 군사 토지매매 상속 판결에 관한 내용은 물론 도교 및 유교 관련 원전도 적혀 있다고 한다. 93년 후베이(湖北)성 궈뎬(郭店)의 초나라 묘에서 나온 죽간엔 "인(仁)은 몸 신(身)자 밑에 마음 심(心)이 있는 자형(字形)으로 몸으로 절실히 느끼는 마음을 뜻한다"고 기록돼 있었다는 것이다. 죽간을 보면 중국 고전의 문체가 왜 간결한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한쪽에 많아야 30∼40자밖에 쓸 수 없는데다 쉽게 고칠 수 없는 만큼 글자 한 자도 신중히 선택했음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대학자 구양수(歐陽脩)는 채륜(蔡倫)의 종이 발명(105년)으로 책이 늘어나자 질 낮은 정보의 확산을 우려했다고 하거니와 전자출판 시대를 맞아 동어반복과 표절은 갈수록 심해진다. 죽간 발견 소식을 들으며 문득 복사기에 이은 컴퓨터의 발명으로 읽고 쓰는 일이 너무 쉬워지는 게 아닌가 싶은 건 지나친 걱정일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