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마/ 난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패닉의 노래 '왼손잡이' 중에서)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많은 학교에서 오른손을 들라고 하는데 왼손을 들면 이유를 알아보지도 않고 야단부터 쳤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선 성냥개피를 이용,억지로 오른손 사용법을 가르쳤다. 집에서도 아이가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어떻게든 고쳐주려 애썼다. 학교에선 규정에 반하는 행동이니 바꿔야 한다고,집에선 사회적 불이익을 막아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대부분의 도구가 오른손잡이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우리나라는 특히 더하다. 오른손장갑을 왼손에 끼면 얼마나 불편한가. 그런데도 왼손잡이를 위한 가위조차 사기 힘든 게 우리 현실이다. 가위뿐이랴.급식시간에 주는 식반부터 야그글러브 키보드 문손잡이에 이르기까지 몽땅 오른손잡이용밖에 없다. 물론 서양에서도 왼손잡이에 대한 배려가 생긴지는 반세기 남짓밖에 안된다. 20세기 초까진 눈에 띄게 박해하지 않았던 우리와 달리 오히려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삼았을 정도다. 16세기 후반 절대왕권 창출로 지배계층이 생긴 뒤 에티켓이 중시된 데다 학교교육이 일반화되면서 왼손잡이를 보통법을 위반하는 묵과할 수 없는 행동으로 여겼던 탓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과 사시가 시정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오른팔(오른손)을 잃고 돌아온 젊은이들이 왼손으로 글쓰고 밥먹고 인사하고 성호를 긋자 이는 이상행동이 아닌 애국심의 표현으로 여겨졌고 급기야 왼손잡이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바뀌었다. 물론 인식과 실천엔 상당한 괴리가 있는 법이어서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건 50년대 후반이었다. 왼손잡이를 구박한 게 단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였음은 알렉산더대왕,레오나르도 다빈치,괴테,마크 트웨인,폴 클레,처칠,슈바이처는 물론 포드,제럴드 부시,클린턴 등 미국의 대통령 상당수와 오프라 윈프리 등이 왼손잡이였다는 데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넬슨제독,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비트겐슈타인은 전선에서 오른팔을 잃고 왼손만으로 자기 몫을 다해냈고,라울 소사 역시 사고로 오른손가락이 마비된 뒤 "황금의 왼손피아니스트"라는 명칭을 얻었다. 테니스 펜싱 크리켓 등 마주 보고 하는 경기 선수엔 왼손잡이가 16%이상이라는 통계도 나왔다. 왼손에 대한 금기나 제약이 줄어든 때문일까,지난해 스웨덴에서 발표된 것처럼 초음파진단이 보편화된 데 따른 현상일까. 서양보다 왼손잡이가 적은 국내에서도 왼손잡이가 급증한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97년 한 주간지에서 조사한 결과 고교 2학년(1980년생)은 4.22%였지만 초등학교 1~3년(88~90년생)은 6.97%나 됐다는 것이다. 7%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게다가 이미 5년전 얘기다. 무소속 정몽준의원이 왼손잡이용 물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감세 또는 면세혜택을 주거나 개발자금을 지원하고,일정규모 이상의 공공시설이나 군대 등에 왼손잡이용 물품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포함한 법 개정을 추진중이라는 소식이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왼손잡이용 물건이 늘어나고 왼손잡이들이 무심코 왼쪽에 지하철카드를 댄 뒤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하는 일도 줄어들지 모른다. 편견은 소극적 저항만으론 극복되기 어렵다. 법 제정이 능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법에서 지원하고 강제하면 조금은 달라질 게 틀림없다. 눈에 보이게 억압하거나 박해하는 것만 차별이 아니다.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겪는 불편함과 불안함을 외면하는 것 또한 끔찍한 차별이다. 물건을 만들어주고 설치해주는 것도 중요하려니와 학교의 경우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짝과 팔이 부딪치지 않도록 왼쪽에 앉혀주는 등의 배려도 필요한 것도 물론이다.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