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마늘 파동이 농가는 물론 정부와 경제계를 또 다시 뒤흔들고 있다. 정부가 올해 말로 종료되는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더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중국측에 합의해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 마늘 농가들이 "정부가 농민을 속였다"며 강력히 비난하고 있는 데다 여.야 정치권도 은폐 의혹 규명과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한.중 마늘 협상'에 참여했던 외교통상부와 농림부 등 소관 부처들은 후속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협상책임을 미루는데 급급하다.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들은 아예 뒷짐을 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산자부 무역위원회(KTC)는 법 규정에 따라 세이프가드 피해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확정, 자칫 한.중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책임 떠넘기는 관계부처 =박상기 외교부 지역통상국장은 지난 16일 "2000년 7월 합의문을 만들 당시엔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탓에 부속서 내용(세이프가드 연장 불가 합의)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외교부의 다른 관계자는 "협상에 참여한 재경부 농림부 산자부 등 관련 부처들도 이미 부속서 내용을 알고 있었다"며 "이제는 주무부처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합의문이 기본적으로 외교부 소관이어서 농민들에게 알리는데 소홀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현재 실무를 맡고 있는 농림부 관계자들은 이 내용을 전혀 몰랐다며 협상 창구인 외교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대외경제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재경부와 마늘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있는 산자부 정통부 등은 입을 다물고 불똥이 튀지 않을까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 거세지는 농민 반발 =농민단체들은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낸데 이어 집단적인 항의 시위도 벌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민단체들은 중국산 마늘 수입이 완전 자유화될 경우 연간 1천7백억원 규모의 직접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말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 사실을 모른 채 KTC에 신청서를 접수한 농협중앙회는 "정부가 무책임한 행정으로 농민을 기만하고 있는데 대해 참담한 심정"이라며 엄정한 세이프가드 피해조사를 촉구했다. ◆ KTC 입장 =전성철 KTC 위원장은 17일 "산업피해구제법상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피해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며 "신청 내용이 판정 기준에 부합할 경우 피해조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KTC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한.중 합의문이 세이프가드 피해조사 개시여부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명시적인 법적 근거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양국의 통상관계를 감안해 관계부처 의견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이전에 농림부가 세이프가드가 더이상 필요없을 만큼의 구조조정 방안 등을 내놓을 경우엔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