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위대했다. 신명나는 한 달이었다. 누구나 꿈을 꾸었고, 그 꿈이 이루어졌다. 월드컵 첫승에 목말랐던 한국축구가 단번에 4강 고지에 올랐다. 모두들 하나가 됐다. 가려졌던 '대~한민국'의 참모습에 온 국민이 어깨동무를 했다. 백두산에 올랐다. '동북쪽 모든 산의 시조'(아방강역고), 들꽃 화관을 인 백두의 산정에서 그 빛나는 6월의 꿈보다 더 큰 꿈을 꾸었다. 오전 6시반. 서둘러 나선 연길의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아침운동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가이드 지동은씨의 설명. 1960년대풍 서체의 한글 간판이 낯익은 거리풍경을 뒤로 하고 백두산행의 분기점 이도백하를 향했다. 시야를 가릴 것 없는 너른 들판은 평화로웠다. 바쁠 것 없다는 걸음새의 노새달구지, 쇠스랑으로 밭을 고르는 농부, 회칠(조선족의 집)을 했거나 붉은 벽돌(한족의 집)로 된 농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까지 느릿해 보였다. 이깔나무가 곧게 뻗은 낮은 구릉은 초록으로 뒤덮여 시원했다. 한국관광객이 주고객인 휴게소에서의 커피 한잔, 토종내음 물씬한 된장국으로 아침을 들고 3시간반쯤 걸려 닿은 이도백하. 살색 굵은 줄기의 미인송을 자랑하는 작은 마을이다. 그 미인송을 두고 이도와 백하 사람들이 편을 갈라 무섭게 싸우기도 했단다. 서파(서쪽능선) 길로 빠졌다. 일반관광객이 몰리는 북파(북쪽능선)보다 덜 알려진 백두산 오름길이다. 1시간반, 허름한 건물의 장백산자연박물관을 지나 서파 매표소에 닿았다. 입장권에는 '국가AAAA급풍경구'라 쓰여 있다. 비포장길의 흔들림이 기분을 돋웠다. 자작나무 하얀 줄기가 아침의 싱그러움을 더해주었다. 오른 것 같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1천7백m의 '고산화원'이다. 장백산자연박물관에서 동승한 한족 가이드 소씨는 "9월초까지 들꽃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며 "단풍이 들면 '백두호랑이의 등짝'을 선명히 볼 수 있는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길가의 거목들이 원시림의 한가운데 든 듯한 느낌을 주었다. 돌개바람에 쓰러져 드러난 나무의 뿌리부분 직경이 어른 키보다 크다. 천지 아래 주창장에서부터는 돌계단. 키 큰 나무가 하나도 없는 까가머리 능선이 장쾌했다. 아직 눈이 남아 있는 그 능선에는 노란색 꽃무리가 융단처럼 깔려 있다. 눈속에서 겨울을 난 뒤 고고하게 꽃을 피우는 백두의 야생화, 노랑만병초다. 군데군데 보라색, 흰색 꽃무리도 어울려 '천상의 화원'을 연상케 했다. 30여분 힘들여 오른 천지는 안개의 세상. 끊임없이 안개를 실어나르는 바람은 손이 곱을 정도로 찼다. 간간이 드러나는 담록색의 천지, 장군봉 청석봉 백운봉 천문봉 등 천지를 호위하는 16연봉의 호령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6월의 불같았던 힘을 모아 더 크고 진한 '민족의 함성'을 울려야 한다는 것. 천지에서 내려오는 길에 금강대협곡을 보았다. 길이 12km, 폭 1백~2백m, 깊이 70m로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연상시키는 V자형태의 협곡이다. 4년전의 산불이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묻혀 있을 백두의 비경중 하나.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포효하는 백두호랑이의 깊은 입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금강대협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원시림 그대로여서 마치 정글트레킹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거울 같은 수면의 고산호수 왕지도 신비로웠다. 이도백하의 식당 겸 숙소인 풍정원에서의 하룻밤. 조선족 공연단의 여흥시간을 연 노래 '반갑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에 묻힌 백두의 천지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백두산=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