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희경씨(43)와 소설가 함정임씨(38)가 잇따라 소설집을 냈다. 은씨는 1999년 소설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이후 3년,함씨는 2000년 '당신의 물고기' 이후 2년만에 낸 작품집이다. 은씨의 중·단편집 '상속'(문학과지성사,8천5백원)에는 199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아내의 상자' 등이 실려 있다. 은씨는 빈틈없는 묘사와 단단한 구성 등 한층 노련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삶은 허구의 무대 장치라고 주장하는 은씨는 '낯선 곳에 가서 살고 싶어요,쓸데없어 보이는 일들을 하면서요,그냥 살아도 살아져요,뭣때문에 자기 인생을 늘 의식하는 거죠'라고 냉소한다. 표제작 '상속'에서는 혼자 죽어가는 노인을 통해 죽음과 삶의 문제를 냉정하게 관찰한다. 주인공 노인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혼자서 감당해온 인물이다. 암선고를 받고도 가족에게 간단히 통보만 한 뒤 혼자 수술을 받는다. 수년 뒤 암이 재발했을때도 그는 가족들과 마지막 길을 공유하려 하지 않고 사업을 확장하려 하는 등 별스런 행동으로 오해를 산다. 그러나 노인의 마지막을 보면서 딸이 느끼는 것은 생명의 오고감,그 옛날부터 면면히 이어온 무엇에 대한 확신이다. 은씨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썼다는 '상속'은 작가의 바람대로 '무섭고도 우습고도 슬픈' 이야기다. 함정임씨의 단편집 '버스,지나가다'(민음사,8천원)는 미니멀리즘 계통의 사진첩 같다. 표제작 '버스…'에서 작가는 존재의 시원이자 환원점으로 몽고의 초원을 그린다. 우체국 여직원인 주인공은 어린시절 집없는 자신을 거두어주었던 남자를 기억한다. 남자는 고아나 다름없는 그녀에게 쉴 곳을 주었으나 병으로 일찍 죽는다. 여자는 허기와 빈혈에 시달리며 몽고로 달려가는 꿈을 꾼다. 남자는 몽고로부터 와서 몽고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어느날 몽고로 편지를 부치는 청년이 우체국에 나타난다. 여자는 청년에게서 몽고의 환영을 본다. 버스는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버스는 다시 올 것이다. 운명에 관한 짧은 소설 '버스…'는 우체국 여자와 손님을 피사체로 한 흑백사진 같다. 그 사진은 서늘한 느낌을 준다. 단편소설은 인생을 한 장의 사진으로 제시한다는 원리에 충실한 작품이다. 함씨는 특별한 줄거리,눈길을 잡아끄는 장치 없이 인생의 비의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