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경영전문기자의 '경영 업그레이드'] 아웃소싱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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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텔사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발명왕' 에디슨이 질시했던 당대 최고의 발명가가 그였다.
텔사는 에디슨이 만든 원시적인 발전기를 개선,자동제어 발전기를 개발했다.
텔사는 전기엔 직류만 있다고 믿었던 에디슨에게 망신을 주며 교류전기 체계를 찾아냈다.
라디오 전신시스템도 그의 고안이었다.
세르비아 출신의 이 천재는 자기 권리만 잘 지켰으면 당대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발명·발견·고안한 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특허등록이 됐다.
그의 능력과 재주를 이용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었다.
에디슨은 월급 몇푼만 올려주고 텔사의 새 발전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교류전기 체계는 웨스팅하우스의,라디오 전신시스템은 마르코니의 발명품으로 각각 기억되고 있다.
수익을 지상목표로 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텔사가 돼야 옳은가,아니면 에디슨이나 웨스팅하우스가 맞는가.
당연히 후자쪽이다.
이미 더 잘하는 업체가 있고,자사가 직접 할 경우 비용이나 위험부담이 크다면 굳이 직접 사업을 벌일 필요가 없다.
그 업체에 맡기거나 사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수많은 '텔사'들이 나타나겠지만 별 수 없는 노릇이다.
세계 정상의 시스템 통합 업체인 시스코를 보자.
시스코가 만드는 것은 '기술'이다.
'제품'이 아니다.
시스코는 핵심역량인 기술에만 집중하고 제품은 전세계에 퍼져있는 수많은 업체들에 맡기고 있다.
기술은 언제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자기 공장을 갖고 직접 생산한다면 새 제품을 만들기가 훨씬 어렵다.
새 제품을 만들려면 기존 라인을 뜯고 새 설비를 들여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설비에 이미 들인 돈도 허공으로 날아간다.
세계 곳곳에 각 분야에서 잘하는 '파트너'들을 확보해둠으로써 시스코는 새 기술 개발에만 매달릴 수 있다.
몸집이 가벼워 시장 수요에도 발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위험은 파트너들과 함께 나누어 갖는다.
파트너가 해당 시장에서 밀리면 새로운 1위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을 수도 있다.
'아웃소싱(외부위탁)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 '남'에게 맡길까 하는 것이다.
아웃소싱으로 망친 사례를 보면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IBM의 PC사업이다.
지난 1981년 최초의 PC를 개발할 때 IBM은 주요 부품들을 아웃소싱하기로 결정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인텔에,운영시스템은 그 때만 해도 신생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에 맡겼다.
부품 및 소프트웨어 공급엔 수백개 업체가 참여했고,시어스를 비롯한 2천여개 업체가 유통을 맡았다.
초기 투자비를 크게 줄인 IBM은 85년에 대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쟁자들은 인텔에서 CPU(중앙처리장치)를 구했고,마이크로소프트에서 똑 같은 소프트웨어를 샀다.
유통채널도 IBM이 통제할 수 없었다.
IBM은 95년께 결국 컴팩에 밀렸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경쟁자로 성장해버렸다.
맡길 것과 맡기지 않아야 할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실수를 범한 셈이다.
아웃소싱은 그러나 큰 물결이다.
세계적인 정보통신회사들이 제조업을 포기하고 전문업체에 맡기기 시작했다.
일부 기업들은 예전엔 특급 비밀처럼 여겼던 인사부서의 업무도 외부 업체에 대행시키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그동안 인력합리화의 수단으로 일부 기업들이 악용한 선례 때문에 여전히 곳곳에서 노사간 분쟁거리가 되고 있다.
자기 부서가 언제 없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회사원들이 적지 않다.
일부 회사에선 반대로 부채를 줄이려고 정말 '돈 되는' 사업까지 남에게 넘기고 있다.
절대로 버리지 않을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정해서 밝히는 경영자들의 '비전 선언'이 절실한 시점이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