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청와대 수석비서관, 비구니, 교수, 무직자 등등... 검찰수사에서 드러난 부실기업들의 '혈세낭비' 과정에는 다양한 로비스트가 개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B건설 박모 회장으로부터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무마 명목으로 9억원을 받아 챙긴 비구니 박모씨(67.여). 30년전 부산에 사찰을 지은 그는 현재 3만5천여명의 신도를 거느린 '큰스님'이다. 박씨는 거액을 로비명목으로 받으면서도 청탁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박 회장측 질문에 "묻지마라. 기다리면 일이 성사된다"고 버텼는데 수사 결과 박씨는 실제 로비활동은 않고 돈만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이 돈으로 땅매입에 5억2천만원을 썼으며 나머지는 수사팀에 압수당했다. 세풍그룹은 전주 민방사업에 뛰어들면서 로비스트를 5명이나 동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김모씨(35)는 이렇다할 직업이 없는 무직자.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에게 부탁해 민방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고대원 전 세풍 부사장으로부터 로비자금 10억원을 받아 챙겼다. 김씨는 이중 8억원은 자신이 챙겼고 나머지 2억원으로 현철씨의 장모와 친분이 있는 자신의 모친을 통해 로비를 시도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또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L씨를 통해 민방사업자로 선정되도록 청탁해 보겠다며 세풍측으로부터 5억원을 받아 모 지방대 박모 교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중 2억8천만원을 쓴 뒤 나머지 2억2천만원만 L씨에게 전달하라며 L씨와 친분이 두터운 정모 교수에게 이를 다시 건넸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정 교수는 돈을 받은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다가 지난달 초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음'으로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