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사가 제시한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는 하이닉스 이사회 반발로 무효가 됐다. 당시 마이크론 회장은 "더 이상 하이닉스에 관심을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최근 하이닉스 이사회 구성원이 바뀌고,1백28메가 D램 가격이 6월 3.20달러 수준에서 7월17일 3.99달러로 치솟자 마이크론은 다시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데 대해 채권단을 비롯한 찬성론자들은 "공급이 만성적으로 수요를 초과하는 상태에서 가격이 널뛰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재무구조가 열악한 하이닉스는 장기적으로 버틸 힘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미 하이닉스 관련 부실채권을 80∼1백% 상각처리한 금융권으로서는 하이닉스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경우 추가대출해야 하고,이 대출이 경기가 나빠질 때 부실화하는 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인수를 선호하는 집단으로는 채권자 외에도 마이크론,삼성전자를 포함한 기존 메모리칩 제조업자들이 있다. 우선 메모리칩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8.7%로 세계 2위인 마이크론이 시장점유율 17.1%로 3위인 하이닉스를 인수하게 되면 시장점유율이 35.8%로 올라간다. 마이크론은 이러한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공급량을 조정함으로써 메모리칩 가격을 정상화,2001년 6억2천5백만달러 적자였던 손익구조를 흑자로 전환할 수 있다. 시장점유율 20.9%로 세계 1위인 삼성전자는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인수해 시장 수급구조를 균형상태로 가져갈 경우 단기적으로는 이익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뺏기게 됨에 따라 시장 주도권을 놓치게 될 것이다. 다만 삼성이 이런 약점을 적극적인 신제품개발로 극복하고,장기적으로는 메모리칩 생산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기고 고부가제품인 비메모리 제품에 주력한다는 전략을 추구한다면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인수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반면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인수는 한국경제에 세 가지 문제점을 야기한다. 우선 하이닉스가 사라지는 경우 우리나라 메모리칩 분야는 두 기업 대신 한 기업만 존재하는 독점구조로 변하게 된다. 물론 마이크론은 하이닉스를 인수하더라도 공장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둘 것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국내에 두 기업이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마이크론이 운영하는 하이닉스 사업부는 마이크론 본사가 있는 미국 서부 아이다호주의 작은 도시 보이즈에서 예산 인사 등 전략적 의사결정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한 기업이 산업을 주도하는 모놉소니 (monopsony),즉 수요독점 모습이 될 것이다. 이 경우, 반도체 관련 기술 개발에 있어서는 한 기업이 국내 기술인력을 독점하는 결과를 초래해서 그 동안 두 기업이 경쟁적으로 투입하던 기초기술에 대한 연구비가 삭감될 가능성이 있다. 대학에서 양성한 연구인력의 취업 역시 두 기업이 경쟁적으로 채용하는 경우보다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경쟁산업과 달리 한 기업이 독점하는 산업에는 기술투자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하기 어렵다. 반도체 생산 장비,부품 등 공급자 역시 한 기업을 고객으로 놓고 경쟁해야 하는 수요독점이 형성되므로 한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반도체 소비자 역시 한 기업이 지배하는 시장에서는 가격뿐만 아니라 애프터서비스 등에서 약자 위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결국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인수는 세계 반도체산업에는 단기적인 구조조정 효과를 가져오는 반면,한국경제와 한국 반도체산업에 대해서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한국경제가 메모리칩 사업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차지할 필요가 없거나,장기적으로 중국 등 후발국에 이 산업의 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면,마이크론에 하이닉스를 매각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이 산업에서 시장지배적 지위가 필요하고,적어도 한동안 이 산업에서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하이닉스의 독자적 생존을 통해 경쟁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최적안이 될 것이다. dscho@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