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파괴의 새 위협은 원조교제다. 소녀와 유부남의 은밀한 관계는 휴대폰을 통해 강화된다. 휴대폰속의 "사랑의 밀어"는 곧잘 "저주의 운명"으로 돌변한다. 불륜의 가책이 파탄의 벼랑길로 인도하고 "더 많이" 사랑한 쪽이 앙심을 품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안병기 감독의 "폰"은 원조교제와 휴대폰을 소재로 삼아 가정파괴에 대한 불안감을 한국적 원귀(怨鬼)의 복수극으로 드러낸 공포영화다. "전설의 고향"식 납량극과 헐리우드식 청춘호러를 결합시켰던 안감독의 전작 "가위"보다 연령대가 높아졌다. 또 "가위"에서보다 피범벅을 줄이는 대신 긴장과 위기의 상황묘사를 강화했다. 잡지사 기자 지원(하지원)은 원조교제를 폭로하는 기사 때문에 끈질긴 협박을 받자 휴대전화번호를 교체한다. 단짝 친구 호정(김유미)의 딸 영주(은서우)는 무심코 지원의 전화를 받았다가 발작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핸드폰에서 괴성이 들려오자 지원은 발신자추적에 나서 과거 이 번호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의문사했거나 실종됐음을 알게 된다. 도입부 "우리 영주가 예쁘게 자랄 수 있게 완벽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라는 호정의 대사는 이 작품의 중요한 단서다. 그 말에 스며있는 강한 집착에는 불안의 그림자가 동반한다. "불안은 위험에 대한 반응이며,억압의 형태로 나타난다"(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살인은 억압의 가장 과격한 분출이다. 이 영화는 내적 불안과 두려움이 일상의 친숙한 사물들을 낯설게하고 공포로 돌변하는 상황들을 포착한다. 감미로운 선율의 베토벤 '월광소나타'에서 문득 살의가 감지된다. 휴대폰 벨소리가 비수처럼 느껴지고,예쁜 손톱이 부러지는 것으로 죽음이 표현되며,나홀로 있는 텅빈 전철이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극중의 지원은 우리 괴담에서 한(限)을 품고 숨진 여인의 사연을 들어주는 "담 큰" 어사 쯤 된다. 그녀는 괴전화 벨소리에도 다른 사람처럼 혼절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사실 서사구조를 엉성하게 하는데 한몫했다. 꿈과 현실을 여러차례 교차시키는 방식도 관습적이란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하지원은 휴대폰 공포에 시달리지만 냉정을 잃지 않는 피해자역을 무리없이 해냈다. 아역 은서우도 섬뜩한 눈빛과 표독스런 대사로 연기재능을 과시했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