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 불안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다른 나라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각국의 '완충 능력'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점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영향력 정도를 보면 △내·외수간 균형 △대 미국 수출 비중 △비가격 경쟁력 △환율제도 △외국자본 비중 △인접국과의 정책풀(pool) 구성 정도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일본은 벌써부터 '9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일본경제는 경기회복의 관건인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데다 금융회사들의 부실채권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올들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던 수출마저 엔화 강세에 따라 둔화 조짐을 보이면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물론 시장의 예비적 기능을 감안할 때 위기설은 그야말로 '설'에 그치겠지만 일본 금융회사들이 유동성 부족사태에 몰리면 아시아 지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본 금융회사들은 아시아 투자자금을 상당부문 회수하고 있는 상태다. 미 금융불안에 따른 또 다른 형태의 '전염 효과(secondary tequila effect)'인 셈이다. 미 금융불안의 또 다른 피해국가는 금융위기에 시달리는 개도국들이다. 이중 중남미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현재 중남미 금융 불안은 유동성 위기에서 시스템 위기를 거쳐 본격적인 실물경제 위축단계로 악화되고 있다. 올 상반기중 아르헨티나 경제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이상 퇴보했다. 현 시점에서 중남미 금융 위기 해결은 미국이 어떤 입장을 보이느냐가 관건이다. 불행히도 이 점에 있어 미국도 금융 불안에 따라 기존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에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워 중남미 사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금융 불안에 따라 반사적인 이익을 보는 국가가 유로랜드와 중국이다. 유로랜드는 여러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나,유로랜드의 상징인 유로화 가치는 '1유로=1달러'의 등가시대에 접어들어 외국인 자금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 중국은 94년부터 '1달러=8.28위안'을 중심환율로 운용하고 있는 고정환율제도가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인접국들이 미 달러화 약세로 자국통화가 강세를 보임에 따라 떨어지는 수출경쟁력을 중국이 고스란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 중에서 중국과의 수출경합 관계가 가장 높은 한국이 가장 큰 피해국이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까지 미 금융불안에 따른 평가는 대체로 낙관적이다. 풍부한 외화유동성과 건전한 거시경제 여건,월드컵 이후 개선된 해외시각 등이 낙관론의 근거다. 특히 경제각료들은 정치적 목적이든 개인적 공치사 차원이든 연일 한국경제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 금융불안 뿐만 아니라 일본 금융기관들의 자금회수 가능성,중국과의 높은 경쟁관계를 감안하면 우리는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한국경제의 차별성과 달리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연일 이어지면서 국내금융시장이 불안한 것은 각종 글로벌 펀드들이 디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 투자금액 축소) 과정에서 수익이 난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미국발 금융불안 같은 대외환경 변화에 완충능력을 키우는 것이 경제의 안정성과 독립성 확보차원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여러가지 대책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경상거래면에서 외수와 내수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노력과 함께 품질 디자인과 같은 비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자본거래면에서는 외환거래 체계를 보다 강화해 국내에 유입된 외국자금의 성격을 파악하고 기관투자가들을 육성해 외국인들에 의해 전적으로 휘둘리는 시장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동시에 인접국과는 통화스와프와 같은 정책풀을 구성해 미 금융불안과 같은 대외환경 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