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북한경제] (2) '돌파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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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근 경제정책을 손질하고 나선 근본적인 이유는 파탄에 이른 경제를 수습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북한은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합영법을 제정하는 등 부분적으로 변화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물자부족으로 극심한 가격왜곡 현상이 벌어짐에 따라 가격체계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해졌다.
이같이 어려운 상황은 80년대 말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이들 국가와의 '우호무역'이 사라지면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은 98년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교역량은 3분의 1로 급감했다.
◆ 총체적 위기에 놓인 북한경제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경제가 총체적인 위기상황에 놓였다고 분석한다.
식량난과 에너지난, 외화난과 함께 공장가동률도 뚝 떨어졌다.
통일부는 북한의 공장가동률이 3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로 인해 소비재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암거래와 밀수는 크게 늘어나 지하경제가 급팽창했다.
정치 안정을 위해서라도 경제시스템의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모든 것을 위에 기대하지 말고 자체로 해결하자"는 캠페인을 벌일 정도다.
계획경제의 붕괴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신지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북한경제의 파탄 요인으로 △모든 부문을 국가에서 통제하는 '지령형 계획경제 체제' △군사 및 중공업 우선정책으로 인한 자원 배분의 왜곡 △급증하는 부패 등을 꼽았다.
사회주의 경제권이 무너짐에 따라 '청산결제방식의 우호무역'이 급격히 줄어든데 따른 충격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 계획경제 실패 인정 =북한은 지난 84년 합영법을 제정하고 91년엔 나진.선봉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해 외국자본 유치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인프라와 비즈니스 마인드 부족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북한 체제 내에서 경제시스템의 개혁을 이루지 못해 실패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이다.
북한은 지난 93년 12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21차 전원회의에서 계획경제의 실패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농업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 무역제일주의를 추진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혁명적 경제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파탄에 이른 북한의 경제를 재건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92년 2백8억달러에서 96년 1백5억달러로 반감했다.
이에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8년 헌법 개정을 통해 독립채산제 및 원가.가격.수익성 등 생산조직의 채산성 관련 규정을 명문화하는 등 본격적인 경제체제 변화를 시도했다.
◆ 제도 개선 효과 못봐 =지난해엔 '신사고'라는 말도 등장했다.
'신사고' 경제전략의 목표는 산업전반을 현대적 설비로 바꾸고 새로운 경영방식으로 경제를 관리해 북한경제를 빠른 시간 내에 선진경제 대열에 합류시키는 것이다.
이어 4월엔 대외교역을 늘리기 위해 가공무역법, 갑문법, 저작권법을 채택했다.
경제정책의 기조도 사상 강조보다 효율과 수익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생산의 전문화 등을 꾀했다.
노동신문은 이와 관련,지난 1월29일자에서 "당의 경제전략은 실리를 보장하는 원칙에서 경제관리를 혁명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지난해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능력껏 일하고 일한 것만큼 보수가 돌아가도록 분배원칙을 정확히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따라 기관 기업소에 실시하던 독립채산제를 성.관리국으로까지 확대하고 부분적이나마 자체 자금조성과 자율경영을 허용했다.
근로자에 대한 교육도 혁명적 열의를 높이기 위한 정치교육을 중시하던 방침을 바꿔 물질적인 인센티브를 강조하고 나섰다.
북한 경제의 변화 움직임은 지난 99년 이후 3년간 연속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생산의 정상화, 계획경제 메커니즘의 복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화폐개혁, 가격조정이라는 좀 더 시장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홍영식.권순철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