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씨의 소설 "황혼"에서 홀로 된 시어머니는 가슴앓이 증세때문에 명치부분을 좀 문질러 달라고 하지만 며느리는 못들은 체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성적 욕구불만에서 비롯된 증세"로 치부한다. 자식들의 정과 관심이 그리웠던 시어머니는 심한 모욕감과 비애를 느끼며 아무도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소외감에 시달린다. 홀로 된 노인들은 따로 사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식과 함께 살아도 마냥 외롭다고 말한다. 나이 들수록 말동무도 해주고 등도 긁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렇게까지 하는 자식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많은 노인들이 이성과의 만남을 통해 쓸쓸함을 위로받고 싶어한다. 혼자 사는 60세 이상 남녀에게 물었더니 97%가 이성교제를 원했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다. 상대방을 찾거나 만나는 일도 점차 대담해진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교제할 사람을 직접 구하기도 하고 마음에 둔 이성이 있으면 속앓이로 끝내던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사귀려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70대 남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에서처럼 성문제 또한 금기시되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노년의 만남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재산문제를 둘러싼 자식들의 반대나 상대방 자녀와의 갈등이 심한 경우도 있고,나이 들어 기다림과 설렘,질투같은 감정에 휘둘리는 게 두려운 수도 있는 탓이다. 미국 역시 사정이 비슷해 노인동거커플이 급증한다고 하거니와 국내에선 소설 "마른꽃"(박완서)에서처럼 포기해버리는 수도 많다. 실버타운에서 만나 데이트하던 70대 남녀가 주위의 눈총때문에 살던 곳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면서 다른 입주자들의 퇴출요구가 거세진 탓이었다는 보도다. 노년의 사랑은 연민과 위로에서 비롯되는 만큼 젊을 때 사랑보다 열정은 덜할 지 모르지만 한결 애틋할 수 있다고 한다. 노인에겐 동성 친구 다섯명보다 이성친구 한명이 있어주는 게 정신적 정서적으로 훨씬 커다란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보고도 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뒤늦게 다시 찾아온 동료의 사랑을 너그럽게 봐줄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