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체력검사 때 1백m를 23초에 달렸다는 걸,그때 얻은 별명이 2박3일이었다는 걸 나이 들어 만난 친구들 앞에서 발설하지 않았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몇 해 전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면서 꿈이 많았다. 밤에 창 밖이나 내다보는 대신 숨겨 놓았던 날개를 펴듯이 자동차 열쇠를 들고 나가 밤거리나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 보려니. 여행도 많이 하려니.시야를 넓힐 수 있을 거야. 삶의 지평이 달라지는 거지. 두 달만에 간신히 커트라인에 걸려 면허증을 땄다. 그 기쁨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시작했는데 돌아온 반응들이 참 썰렁했다. 3박4일은 걸릴 줄 알았더니 벌써 따셨어? 축하는 하겠지만 네가 운전하는 차에 나를 태우려고 들지는 말아 줘! 따위의 말들로 찬물을 끼얹지 않는가. 결정적으로 내가 빌려 타려던 차의 주인은 바보가 아닌 것을 증명했으니 됐지 않느냐고 기를 죽였다. 이 인간들이 내 기를 꺾어 바보로 만들어 놓고 우월감을 누리려는게 아닌가 싶은 혐의가 없진 않았지만 그 불신들을 무릅쓸 정도로 운전해야 할 당위성도 없어서 면허증을 서랍에 넣고 말았다. 그리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고 웬만하지 않은 거리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특별한 일에는 주변 사람들 차에 실려 다니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 면허증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게 아니었다는 건 최근에 깨달았다. 남들과 발을 맞추지 못한 채 나 혼자 도태되는 건 아닐까 싶었던 조급함에서 그때 풀려난 것 같기 때문이다. 더불어 느리게 움직이며 사는 맛을 그때부터 느끼기 시작했던 듯도 싶다. 자전거도 못타는 열등한 인간이었을지는 모르나 연약한 여자였던 적은 없어서 보호대상으로 분류돼 본 일이 없는데 그 즈음부터 이따금 보살핌을 받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몇 분 뒤에 도착하겠다는 전화를 받으며 외출 준비를 할 때 나를 집 앞에 내려주고 가는 차의 꽁무니에 손을 흔들 때의 기분 같은 것. 또는 유치하지만 꽉 막힌 도로를 보며 유유히 인도를 걸을 때의 으쓱함 같은 것. 오늘 저물녘 산보 길에서 한 유모차를 만났다. 아기가 예뻐 손을 흔들어 주다가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찔려 얼른 물러났다. 10년 전쯤 내가 유모차를 밀고 다닐 때 운전이 서툴러 아기를 두 번이나 떨어뜨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 juhuy9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