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크게 출렁이고 있다.2차대전 이후 최대 폭락'이란 활자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70년만의 최대 상승'이란 뉴스가 전해지곤 한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의 상승세는 지난 2년간의 하락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불안한 증시는 지난해 9.11테러 이후 고공비행하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인기도마저 깎아내릴 정도다. 주가가 일시 반등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2000년 상반기 절정에 달했던 미국 증시에서 지금까지 사라진 돈은 무려 7조달러(시가총액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정부가 76년 동안 쓸 예산(올해 1백12조원 기준)인 약 8천5백조원이 날아간 셈이다. '사라진 7조달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99년 말 연간 매출 4천만달러의 광고회사를 팔고 은퇴한 짐 프링글씨(63)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회사를 팔아 마련한 2백만달러로 주식을 샀다. '든든한' 주식을 담보로 사우스캐롤라이나 해변가에 멋진 집을 짓기 시작했다. 1년에 한번씩 부부가 해외여행을 다니겠다는 근사한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주가가 고꾸라지면서 주식은 거의 휴지조각이 됐고, 건축중인 집은 저당잡혔다. 프링글씨는 '먹고 살기 위해' 광고회사를 다시 차려야만 했다. 퇴직자들을 위한 로비단체인 AARP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 동안 미국내 55세 이상의 취업인구는 8.4% 증가했다. 1백60만명의 퇴직자들이 새로 일자리를 찾았다는 얘기다. 물론 55세 미만에서 노동인구가 늘어난 연령층은 한 곳도 없다. 미국 노인들은 대부분 퇴직금을 주식에 투자한다. 젊어서 번 돈을 주식에 투자해 여기서 불어나는 돈으로 느긋하게 노후를 살아가겠다는 생각에서다. 55세 이상 인구층의 주식투자비율이 다른 계층에 비해 2배 이상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들은 요즘 집을 떠나지 못한다.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하루종일 증권시황에 귀를 기울이는게 일과가 돼 있을 정도다. 주가가 한때 대폭락했다가 다소 회복돼 약간 여유를 찾게 됐지만 이들의 얼굴에서 노후에 대한 근심이 완전히 가시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