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사정위원회에서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합의안 도출이 무산되면서 정부는 단독 입법절차에 들어갔다. 경제계 노동계, 나아가 정치권의 쟁점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고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 제도의 본질이나 이 제도와 경제운영 기본방향과의 관계에 대해 정부를 비롯한 노사 양측이 갖고 있는 인식이 적절한지, 그간의 추진 방식에 문제점은 없는지 다시 한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주5일 근무제'는 정부가 법제화를 서두르고 시행을 강제할 일이 아니다. 이 제도는 어느 경제사회나 경제.문화적으로 성숙해지고,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경제적 소득보다 여가의 가치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보편화될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제.사회적 현상이다. 법제화가 앞서갈 일은 아니다. '주5일 근무제'에 따르는 쟁점의 본질은 '근무시간 단축에 따르는 실질적 임금인상 요소를 노사 어느 측이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에 있다. 이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구체적으로 이 새로운 임금인상 효과를 흡수할 수 있는 기업의 경쟁력 유무와 정도의 문제이며, 노사관계 측면에서 보면 이 인상요소를 두고 겨루게 될 노사 양측 협상력의 문제다. 이 양 면이 다 개별 기업을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설사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는 전 산업,전 기업에 일률적으로 시행될 성질의 것이 아니고, 그 구체적 내용은 개별 기업단위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노사간 협의와 협상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그래야만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기본으로 하여 기업구조를 재편하려고 하는 이 정부의 기업정책 기조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는 이 제도시행의 전제가 되는 사회.경제적 진보 단계에 대한 사회적 확인 내지 합의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제도의 시행을 위해 노사정위원회가 구체적 내용까지 합의하고,이를 바탕으로 법제화를 추진하고, 이것이 여의치 않자 단독 입법으로 밀고 나가려는 정부의 추진 방식은 시장원리에 기초한 경제운영의 기본방향이나 기업정책의 기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한 노측이건 사측이건 이 제도의 강행 추진을 반대하는 이유를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무산된 사실에서 찾는 것도 문제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 '노사정위원회'라는 기구를 상설화하고, 구체적인 주요 노사 현안문제의 대부분을 노동시장에서가 아니라 이 기구를 통해 일괄 타결하겠다는 정부의 노사정책 기조부터가 같은 정부의 경제운영 기본방향과는 전연 조화되지 않는 것이었다. '노사개혁'은 이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돼 온 4대 개혁의 하나다. 그러나 그 동안 주요 노사현안의 어느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미루어졌고, 노사 갈등은 계속 증폭돼 왔다. 그래서 초래된 불안정한 노사관계는 아직도 우리 기업환경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부정적 시각의 주요소가 되고 있다. 나아가 노사개혁 부진은 다른 부문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모든 결과는 노사관계에 있어서 '시장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을 가리지 않은데 근본 요인이 있다. 물론 노사관계의 특성상 노동시장의 역할과 기능이 보통의 경제재시장과 차이가 있고 정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크겠지만,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한 여기에도 시장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은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 그간 이 '주5일 근무제'를 추진해온 방식은 시장경제 원리를 추구하는 정부라면 절대로 택해서는 안되는 방식을 택한 대표적 사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주5일 근무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정도로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성숙됐다고 믿는다면, 이제라도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일단 손을 떼고, 노동시장을 믿고, 그 시장 안에서 개별 기업단위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그 구체 내용을 합의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아도 된다. 법제화는 그 뒤로 미루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일수록 정도(正道)에 따라 풀어야 한다. 이 경우 정도는 바로 노동시장을 존중하고 시장원리를 따르는 길이다. < ihkim@shink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