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과주의의 아킬레스건 .. 趙東根 <명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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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전형(典型)'으로 인식하고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 정착을 위해 노력해 왔다.
우리가 미국 자본주의를 좇은 것은 자본주의를 받치고 있는 세 기둥인 '경쟁 공정규칙 인센티브' 관련 제도가 잘 정비됐다는 판단에서였다.
미국 경제가 경쟁력과 역동성을 갖춘 데에는 공정규칙과 투명경영의 순기능이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한 미국 경제가 엔론을 필두로 한 잇단 회계부정으로 '신뢰상실'이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과 미국 자본주의의 투명성을 믿고 밀려들어온 자금이 속속 빠져나간다면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짐작조차 어렵다.
그토록 투명성과 공정규칙을 자부해 온 미국경제가 신뢰위기를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우리 경제에 대한 시사점은 무엇인가.
일각에선 이번 회계부정의 원인을 일반회계원칙(GAAP)의 허점과 최고경영자의 탐욕으로 돌리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법규나 제도의 미비가 아닌 미국 기업의 관행을 깬 CEO의 '전염적 탐욕'이 회계부정의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회계부정은 스톡옵션의 왜곡된 유인구조와 단기실적 중심의 성과지상주의 경영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회계원칙의 허점은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이를 회계부정의 원인으로 돌리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미국은 '신경제'로 대변되는 지난 10년 동안 호황을 누렸다.
신경제는 IT혁명에 의해 추동되었기 때문에 경기변동상의 확장국면과 질적으로 다른 성장동력을 가질 수 있었다.
또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로 이해관계자 모두 주가 대세상승이라는 자기만족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음이 밝혀지고 경기가 하강하자,주가방어차원에서 CEO들이 회계부정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더욱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분기별 실적보고서 작성도 CEO로 하여금 자리보전을 위해 단기적 이익창출에 급급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미국식 스톡옵션 위주 성과주의 경영은 경기하강기일수록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CEO 회계감사인 기업애널리스트, 심지어는 감독당국 등 이해 합치자간 '사적결탁'을 유발할 개연성이 높다.
이는 견제와 감시를 통한 균형이라는 시장경제규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더욱이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은 제품 고객 경쟁기업보다는 월가의 니즈에 우선적으로 대응하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CEO 본연의 장기적 기업경쟁력 강화에 소홀히 하기 쉽다.
미국의 회계부정을 계기로 일각에서 '탈(脫) 미국식 경영'이 주장되고 있다.
미국식 경영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취할 자세는 아닌 듯 싶다.
대신 제도가 비교적 완비된 나라에서조차 회계부정이 발생할 수 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 '투명회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고 제도보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회계부정은 투자자를 기망하고 자본시장의 기본을 흔드는 경제범죄행위기 때문이다.
어쨌든 스톡옵션과 단기실적 위주 성과주의 경영방식은 한국적 현실에 비춰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우선 주식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한 스톡옵션은 의미있는 인센티브가 되기 어렵다.
얼마전 어느 금융인의 스톡옵션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사자의 경영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은행주식이 회복된 데에는 분명 공적자금의 투입도 일조했다.
또 단기 성과위주경영은 기업의 몸집을 줄여 비효율을 덜어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새로운 성장원천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 기업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끝으로 미국의 회계부정은 소유경영자에 비해 시계(視界)가 짧을 수밖에 없는 전문경영인에 의한 '대리인 비용'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이 체제 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유연한 정책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결국 미국식 경영은 맹종과 배척이 아닌 우리 경제의 진로를 감안한 비판적 취사의 대상인 것이다.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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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