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근영 <금감위원장> .. "금융 구조조정 고삐 죄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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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일로 취임 2주년을 맞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요즘의 근황을 "많이 참고 있다"는 말로 요약한다.
정부가 주도하던 구조조정을 금융계와 기업 자율의 상시조정 시스템으로 바꾼 데다,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경영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은 간섭 대신 자율을 가급적 존중하면서 '참고 지켜볼 일'이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구조조정만이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는 신념이 확고하다는 얘기다.
이 위원장을 서울 여의도 집무실로 찾아가 그가 최대의 화두로 삼고 있는 구조조정 현안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 대담 = 이학영 경제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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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탠더드'로 통했던 미국식 회계제도에 많은 허점이 드러났습니다.
국내 회계제도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합니까.
"1997년 말의 외환위기가 국내 기업의 분식회계 관행을 수술하는 계기가 됐습니다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회계제도와 관행의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설치하고 분식회계 취약부문에 대한 감리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하이닉스반도체 처리 문제가 여전히 현안으로 남아 있습니다.
"도이체방크 등을 하이닉스의 재정 자문사로 선정해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
최근 실사를 끝낸 뒤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주채권회사인 외환은행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만 처리방향 만큼은 조속히 가닥을 잡아야 합니다.
굿 컴퍼니(good company)와 배드 컴퍼니(bad company)를 만들어 유지할 부분과 매각할 부분을 정해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서울은행에 들어간 공적자금을 조기 회수하려면 지분 1백%를 전액 현금으로 매입하겠다는 제안서를 낸 론스타에 매각하는 것이 낫지 않았나요.
"우량 은행과 합병시키는 것이 최우선적인 처리방안이었습니다.
서울은행 매각 문제는 전반적인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규모가 작은 은행이 너무 많아요.
'오버뱅킹'(overbanking)에 따른 저효율구조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죠."
-조흥 외환 등 다른 은행들이 추진 중인 합병 물밑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은행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와 겸업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겸업화가 진전되면 정보기술(IT) 투자를 어느 정도 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됩니다.
IT 투자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죠.규모가 작은 은행은 감당해낼 수 없습니다.
중소형 은행은 틈새시장을 개척해 전문화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국내 시장 규모로 볼 때 전국 은행 수는 몇개가 적당합니까.
"금융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대개 3∼5개라고 합니다.
대형은행은 2개로 충분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5개도 많다고 하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국내 금융시장 규모에 비해 은행들이 너무 많고 규모도 작다는게 공통된 인식입니다.
증권사도 너무 많아요."
-증권사 구조조정은 성과가 없지 않습니까.
"최근 신한과 굿모닝증권이 합쳤습니다.
후속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다만 시장 자율로 결정하다 보니까 늦어지고 있지요.
국내 증권사는 너무 수수료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또 각자 IT 투자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쟁에서 견디기 어렵습니다.
대형 증권사는 투자은행으로 발전시키고 중소형 증권사는 인수.합병이나 퇴출로 전문화하도록 환경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은행이 과거와 달리 정부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금융계가 과거의 관치 관행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로 자율화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지요.
정부가 간섭을 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많이 참고 있습니다."
-올들어 조흥 외환은행이 내부의 젊은 인사와 은행 경력이 없는 외부 전문가를 각각 새 행장으로 선임했습니다.
신임 행장들이 잘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잘들 하고 있습니다.
은행과 증권 등 금융회사간 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은행이 대출만하는게 아니라 투자도 합니다.
은행장은 은행 출신만 맡아야 한다는 관념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의 변화를 잘 짚어낼 수 있는 개혁적인 인사가 들어가 은행 경영을 혁신해야 합니다."
-남은 임기 동안 역점을 둘 과제는 무엇입니까.
"금융계와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가할 생각입니다.
우리 경제가 대외적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구조조정뿐입니다.
해외 전문가와 언론들이 그간 한국이 이룬 구조조정 성과를 들어 '세계는 한국에서 배워라'고 극찬할 때는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합니다.
그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창조적 파괴'가 경제 전반에도 필요합니다."
정리=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