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기인,광인,시를 쓰는 거지로 불리는 작가 이외수씨(57)가 3년 7개월여의 침묵을 끝내고 소설 '괴물'(해냄,전2권·각 8천5백원)로 독자들을 찾았다. 최소 50만명의 고정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그가 '황금비늘' 이후 5년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인간 내면에 잠복한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괴물'이 외부세계인 현실에 맞서 표출되는 모습을 작가 특유의 신비로운 상상력과 통쾌한 농담으로 풀어냈다. 전체 81장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된 '괴물'은 각 장별로 화자 및 시점이 달라 독자들의 신경을 곧추세우게 만든다. 서너 장을 건너뛰어야 앞의 사건을 설명해 주는 배경이 나오기도 한다. 사건의 실체를 알 만하면 어느새 전혀 다른 인물과 사건이 다시 펼쳐진다. 이에 대해 작가는 '81개의 실오라기를 한올 한올 엮어 한장의 커다란 그림으로 완성시키는 조각보'라고 설명한다. 주인공 전진철은 왼쪽 안구가 함몰된 채 태어나 어렸을 때 미국에서 성장한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으로 귀화했지만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적인 충동에 휩싸여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다. 도벽·방화·섹스 충동이 끊임없이 그를 유혹하고 군중과 화살표에 대한 원인 모를 증오가 그를 압박한다. 폭력적인 충동의 근원지를 찾던 전진철은 전생에서 자신이 왼쪽 눈과 가슴에 화살을 맞고 억울하게 죽었음을 알게 된다. 이후 그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을 하나 하나 찾아 다니며 독침으로 쏘아 죽인다. '괴물'에는 이밖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와 사건과 얽히고 설키면서 입체적인 소설 읽기의 재미를 선사한다. 어떻게 보면 약간 황당하게도 느껴지는 소설의 기둥 줄거리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이에 대해 이씨는 "당신은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고 반문한다. '괴물'은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인간들에게서 비롯되는 온갖 악행과 범죄가 만연하는 구원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과연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진다. '장수하늘소'나 '황금비늘' '벽오금학도' 등의 기존 작품들에서 깨달음과 도를 말하고자 했다면 이번 '괴물'에서는 악으로써 악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이외수는 단 몇 줄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정성을 쏟아붓기로도 유명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북한 공작원이 사용하는 독침(브롬화네오스티그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국가정보원과 경찰 대학연구소 등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결국은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괴물'을 쓰는 동안 그는 하루 한끼 식사만 하고 잠도 3∼4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대신 담배는 하루 8∼10갑을 피웠다. '육십 이전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대표작 한번 써 보자'는 다짐 때문이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