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에는 모두 12명의 원장이 거쳐갔다. 평균 재임기간은 2.5년. 과학기술계 인사들에 따르면 'KAIST 원장'이란 자리는 당시 대통령과 과기부 장관의 연줄에 따라 결정되는 자리였다.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원장이 임명돼 왔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KAIST 역대 원장의 대부분이 전형적인 학자 출신이며 행정가로서의 능력은 전반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다. 이상수 초대원장은 정통 물리학자 출신이다. 당시 원자력청장으로 재직하면서 KAIST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다 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얼마후 과기처 장관이 KIST 출신의 최형섭 박사로 바뀌면서 이 원장은 임기를 2년이나 남겨 놓고 물러났다. 이상수 원장은 그러나 KAIST 역대원장 가운데서는 80년대 원장을 맡았던 전학제 박사와 함께 두번씩이나 원장에 오르는 행운을 누렸다. KAIST가 우여곡절을 거쳐 안정기에 접어들게 된 데는 제4대 조순탁 원장의 역할이 컸다. 조 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KAIST 도약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같은 공로로 조 원장은 연임에 성공, KAIST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6년간) 원장직을 맡았다. 1980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면서 KAIST는 정부출연연구소 통폐합 조치에 따라 격동기를 맞는다. 87년까지 8년간 원장이 5번이나 바뀌었고 90년 대전으로 내려갈 때까지도 혼란이 계속됐다. 91년 취임한 천성순 원장은 대외적인 활동을 가장 활발히 벌였던 인물이다. 정부예산을 따내기 위해 로비를 마다하지 않았고 교직원의 후생복지를 향상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천 원장은 그러나 워낙 성격이 직설적이고 강해 학교내부에서는 인기가 그리 높지 않았다. 천 원장에 이어 94년 취임한 심상철 원장은 교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이사회에서 총장으로 선임된 최초의 선출직 원장이었다. 심 원장은 특히 재임기간(1년2개월) KAIST 발전기금 조성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2004년까지 10년간 1조원을 모금하겠다"는 내용의 1조원 발전기금조성 사업은 다른 대학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심 원장의 순수한 의도는 안팎의 음해를 받으면서 결국 95년 5월말 사퇴 파동으로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