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우리의 잊혀진 자화상 .. 서양화가 강형구씨 두번째 개인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양화가 강형구씨(48)는 10년째 자화상만 고집해 온 작가다.
지난해 예술의 전당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연 데 이어 불과 1년도 못 돼 14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자화상'전을 갖는다.
쉰이 가까운 나이에 이번이 겨우 두번째 개인전이지만 규모 면이나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 면에서 결코 예사롭지 않다.
강씨는 이번 전시에서 1백20호에서 1천호에 이르는 대작 45점을 출품한다.
대상은 작가 자신의 얼굴이다.
젊은 날의 초상부터 현재의 자신,그리고 늙고 병든 뒤 고요하게 숨을 거두기 직전의 얼굴까지 차례로 보여준다.
특히 백발 성성한 노인의 모습에서는 삶의 고뇌가 배어 나온다.
표정은 하나같이 우수에 잠긴 듯 침울하고 웃음기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극사실 기법으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땀구멍 하나 하나까지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자화상은 '나'라는 고유명사를 그린 게 아니고 남들 속에 같이 존재하는 '나'라는 대명사를 그린 것입니다."
자화상은 다시 말해 모델만 본인일 뿐 현실에서 함께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누구든 나이 들어 노년기 자신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기 싫어하는 법.그런데도 작가가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도는 무엇일까.
"젊음을 망각하고 사는 젊은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늙은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젊음이 있었던가를 회고하기보다는 젊음을 배신하지 말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1973년 중앙대 서양화과를 나온 후 무역회사에서 평범한 샐러리 맨으로 9년,동숭동에서 갤러리 운영 5년 등 20년 가까이 외도를 하다 92년에야 다시 붓을 잡았다.
강씨는 "장기간의 외도가 오히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부채질하는 보약이 됐다"고 털어놓는다.
"제 주변에는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웃을 일이 없고 실제로 늘상 웃으면서 사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강씨의 자화상은 국내외에서 제법 평판을 얻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2백호짜리 자화상은 애틀랜타 카터센터에 소장돼 있다.
앙리 뒤낭의 인물화 등은 대한적십자사와 올림픽회관에 걸려 있다.
20일까지.(02)399-1774. 전시는 오는 29일부터 9월4일까지 경기도 분당 삼성플라자갤러리로 이어진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