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기숙사 앞 자전거 보관대. 넓은 캠퍼스를 돌아다니기 위해 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2천3백여명의 학부학생 가운데 약 70%는 자전거로 기숙사와 강의실을 오간다. 신입생이 입학하는 봄이면 으레 팔.다리를 다쳐 병원을 찾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자전거를 처음 타 본 탓이다. 군데군데 흠집이 난 채 세워져 있는 자전거는 '공부벌레' KAIST 학생들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전공 공부 외에는 관심이 없는 학생들. 그러나 모든 학문이 융합하는 '퓨전시대'인 21세기 세계 과학계를 이끌기에는 자신의 전공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창의성이 강조되는 요즘엔 이같은 특성은 결정적인 흠집이 될 수도 있다. 인문.사회과학을 모르곤 전공도, 학문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KAIST 학생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학부과정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안상현씨(물리학과)는 "학교측이 주말마다 인문·예술 분야의 강연회나 콘서트를 열지만 객석엔 빈 자리가 많다"며 "학생들 스스로가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생물과학과의 한 교수는 최근들어 과학고 출신이 주류를 이루면서 과학분야 말고는 흥미를 갖지 않는 분위기가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교 과정을 2년만에 속성으로 마치고 곧 바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다보니 학생들이 '한쪽 길'로만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설립 초기 일반대학 출신 대학원생들이 대부분이던 시절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연구활동에 참여하던 것과 비교하면 요즘 학생들은 교수가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인(全人) 교육을 위한 학교측의 노력도 아직은 미흡하다. 교양과정부를 지난 97년 인문사회과학부로 바꾸고 강좌를 늘렸지만 학생들의 바람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인문사회과학부의 한 교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없이 과학기술 전공에만 매달릴 경우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며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근접한 KAIST의 연구력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인문사회 지식을 보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학.석사 과정 도중에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 학부 학생과 석사과정을 밟던 중 유학을 떠난 학생은 올들어 22명에 이르고 있다. 이는 지난 한햇동안의 14명에 비해 60%가 늘어난 것이다. '우수한 과학자가 되려면 과학이외의 학문까지도 잘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KAIST인들이 새겨야 할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