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식 경영'이라는 말이 우리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히딩크식 경영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본에 충실하라.둘째, 학연 및 지연 등을 배제하고 정도를 걸어라.따지고 보면 히딩크식 경영이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들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의식구조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식구조의 개혁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아픔을 수반한다. 따라서 이를 감내할 용기가 우리에게 없다면 히딩크식 경영도 일회성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경제를 운용하는 정부관료의 의식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관료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행태는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권한은 정부관료들이 계속 보유하고 있고 책임은 허수아비격인 위원회 또는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분산시킨다. 작금의 무역위 또는 공자위 파행 운영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썩기 시작한 우유는 계속 썩기 때문에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공자위 파행 때문에 대생과 서울은행의 처리가 지연되거나 졸속 처리되고 있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자리에 누가 연연하겠는가. 이것이 공자위가 파행 운영되는 이유다. 또 수없이 개최되는 공청회지만,공청회에서 수렴된 의견이 정책에 반영된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둘째,기업이 정부방침에 순응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면 어김없이 괘씸죄를 적용한다. 기업이 잘못하면 공익의 대변자인 정부가 나서 이를 제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제재수단인 세무 조사나 부당내부거래 조사는 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조사를 해 설사 기업에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조사 자체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요즘 기업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는 공정위의 통상업무라고는 하지만,과거 정부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 셋째,선거철이 다가오면 선심성 행정을 남발한다. 대선을 앞둔 주5일 근무 법제화가 이에 해당한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주5일 근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1만달러도 되지 않는 지금 국민소득이 몇만달러나 되는 선진국보다 노는 일수가 많을 수는 없다. 토요일에 일을 해야만 유지되는 중소기업에 주5일 근무제는 노사분쟁의 불씨만 제공할 뿐이다. 이를 정부가 나서 밀어붙이기보다 주중에 있는 공휴일을 없애는 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노사정이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하여 정부가 나서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은 선거를 앞둔 선심성 행정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경제관료들의 의식구조가 이러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후회하면서 불황 탈출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일본 경제관료들의 행태가 변하지 않는 한 가망이 없어 보인다. 지난 시절 우리는 일본의 경제운용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때문에 일본의 침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IMF 위기를 겪는 동안 기업과 금융회사는 혹독한 시련을 당하면서 변화의 아픔을 경험했다. 그러나 정부관료들은 무풍지대다.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듯이 경쟁이 배제된 조직은 침체되게 마련이다. 정부는 개방직 직위를 대폭 늘리고, 민간인의 창의성이 정부조직에 접목되도록 제도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판으로부터 같은 노랫가락이 고장난 축음기처럼 계속 들려오는 가운데 정부관료들의 의식구조가 요지부동일 때 우리는 우리의 장래에 대해 실망한다. 그러나 7백만 인파가 거리에 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희망을 가졌다. 희망과 실망이 교차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만 경제관료들의 의식구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의 뒤를 따르고 있을 것이다. leesb@email.hanyang.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