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오후에 방영되는 KBS 1TV의 '사랑의 리퀘스트'는 우리 이웃의 삶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생생한 휴먼 드라마다. 집 나간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의 하루 세끼 식사를 걱정하는 소년소녀가장,자녀의 병원비를 마련치 못해 애간장을 태우는 어머니 등이 이 프로에 등장한다. 하나같이 구구절절한 사연들에 시청자들은 눈물을 훔치고 삶을 헤쳐가는 그들의 의지에 감동하곤 한다. '사랑의 리퀘스트'를 5년간이나 빠짐없이 지켜본 강태원 할아버지(83)가 남보다 덜 먹고,덜 자고,더 일해 평생 모은 돈 2백70억원을 지난 주말 KBS에 선뜻 내놓았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는 당부와 함께.그는 지난해에도 충북 청원의 꽃동네에 시가 1백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쾌척했었다. 이런 과정에서 자녀들과의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폐가 굳어지는 폐섬유증을 앓고 있는 강 할아버지는 "내가 번 돈 내가 쓰고 그것도 좋은 일을 위해 쓰고 가겠다"며 한 마디로 일축했다고 한다. 강 할아버지의 이같은 결단은 우리의 전통미덕인 '상부상조'정신을 일깨워주는 것이어서 기부문화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 같다. 전에도 삯바느질 국밥장사 콩나물장사를 해 한평생 꼬깃꼬깃 모은 돈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내놓은 할머니들이 여럿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유산 1% 기부''월급 0.1% 기부''보은 기금''양심 기금''의인 기금'등 갖가지 이름의 '기부'가 생기면서 택시기사 환경미화원 등 여유가 있을리 없는 계층들도 참여,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비록 큰 돈은 아니라 해도 피와 땀이 배어있는 돈을 '더 낮은 곳'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어서 그 감동은 훨씬 더하다. 우리 국민들의 기부에 대한 인식은 아직 낮은 편이다. 1인당 한해 평균 기부액은 고작 5천8백원이라고 한다. 소득수준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의 70만원과는 큰 차이가 있다. 스스로 실천에 앞장 선 강 할아버지의 예를 보며 이웃사랑의 공동체정신이 기부문화로 정착돼 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