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東海 표기와 日帝 잔재..朴星來 <한국외대 과학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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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수로기구(IHO)가 '동해(東海)'를 '이름 없는 바다'로 남길 모양이다.
우리의 '동해'는 세계 속에서는 '일본해(Sea of Japan)'로 알려져 왔다.
IHO는 '해양의 경계'개정판에서 동해를 '표기분쟁 지역'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72개 회원국들의 의견을 문의중이다.
이미 1970년대 이래 한국은 '동해'가 '일본해'로 불리는 데 대해 국제사회에 항의해 왔고,1995년 이후는 사단법인 동해연구회 등이 열심히 동해 이름 찾기에 나선 결과 일단 희망적인 조치를 얻어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불만이 대단하다.
'일본해'가 식민지시대에 강요된 명칭이라는 한국측 주장은 근거가 없다면서,'일본해'는 이미 18세기 말부터 정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또 세계지도 대부분(그들 주장으로 97%)이 '일본해'라 하고 있으니 바꿀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일본측 주장은 무리다.
'동해'는 1919년 세계의 해양표기를 정하는 '국제수로회의'에서 '일본해'로 명칭이 공식화됐다.
그 전까지는 동해와 일본해가 모두 국제적으로 사용되던 용어였다.
그러나 20여개국이 참가한 1919년 회의에 일본대표는 셋이 참가했지만,한국 대표는 없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은 일본의 한부분이었기 때문에 '동해'는 말하자면 일본의 내해(內海)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 대표도 없는 채 '동해'는 '일본해'로 확정돼 지금까지 계속 세계지도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한국은 해방된 다음 1957년에서야 IHO에 가입하고,우리 대표가 참가한 것은 1962년 제8차 회의부터였다.
생각해 보면 일제시대의 찌꺼기로 우리 둘레에 남아 있는 문제는 '동해'만이 아니다.
그 가운데에는 청산해야 할 것도 있지만,그렇지 않은 유산도 있다.
우리는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이름 바꿨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렸다.
국민학교 이름의 경우,그 많은 비용을 들여 고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느낌이고,제대로 된 국립박물관을 짓기도 전 박물관 건물만 없앤 것 같아 총독부 건물 철거도 유감이다.
건물 하나 없앴다고 우리 역사에서 식민지시대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흔히 청산의 대상이라 생각하는 또 다른 안건으로 표준시(標準時)의 문제가 있다.
일본과 같은 표준시를 쓸 것이 아니라,우리 실정에 맞게 일본보다 30분 늦은 한국고유의 표준시를 쓰자는 의견이 그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 표준시는 지금대로 놓아두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보다 과학적으로 우리 표준시를 바꿀 경우 중국과 일본시간의 중간 30분 차를 두게 될 텐데,이것은 국제화시대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지난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영자 표기를 Korea에서 Corea로 바꾸자는 논의도 있었다.
알파벳 순서로 자리를 정하는 국제회의 등에서 일본(Japan)이 우리(Corea) 보다 뒤에 위치하게 되는 것을 싫어해서,을사조약(1905년) 이후 로비를 통해 Corea를 Korea로 바꾸게 됐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읽은 19세기말 선교사의 글에 이미 미국인들 사이에서 Corea는 Korea로 바뀌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앞으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렇게 고칠 수도 있을 듯하다.'동해연구회'처럼,'Corea 연구회'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Korea를 Corea로 바꾸려는 노력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
정말로 바꿔야 할 일제의 잔재용어 하나는 바로 '조선(朝鮮)'왕조를 '이조(李朝)'라 부르는 일이다.
일본은 1910년 8월29일 일본천황의 조서를 통해 대한제국의 멸망을 선언하고,그 황실에 대한 예우를 발표했다.
대한제국 황실을 일본천황가의 하부단위인 왕(王)·공(公)급으로 편성해서 소속시킨 것이다.
그에 따라 이왕직(李王職)이란 관서를 두어 조선의 왕실사무를 맡도록 했다.
조선의 이씨왕족은 일본천황가의 하부 왕족에 편입된 것이다.
그로부터 '조선'이란 정식 국호는 확실하게 '이조'로 바뀌어 갔다.
'이씨 조선'이란 '고(古)조선'과 구별하기에도 좋아서 쉽사리 새 용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조'란 '일제의 하부 소속 왕조'를 뜻한다.
그런 의미도 모른채 우리는 오늘도 '이조'란 표현을 거리낌없이 쓰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