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혐의자들에게 세무조사의 '칼'을 빼든 것은 외환자유화 이후 이들 지역을 통한 자본거래로 탈세를 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 국가들이 2005년까지 무세율 등 유해 조세제도를 폐지하고 금융정보를 교환키로 약속하는 등 조사에 협조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이다. ◆ 사례 =국세청은 일단 중소기업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적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선진 금융기법을 가장, 온갖 탈세를 일삼은 혐의가 집중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A기업의 대표 김모씨는 지난 99년 3월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위장 역외펀드를 설립, 국내 벤처기업이 발행한 해외전환사채(CB)를 헐값에 인수했다. 이후 이를 주식으로 전환, 매각함으로써 3개월 만에 2백50억원의 시세차익을 냈다. 김씨는 역외펀드를 국내에서 운영하면서도 말레이시아 법인인 것처럼 꾸며 국내에서 납부해야 할 유가증권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 등 1백75억원을 탈세했다는 것. 미국에서 명문대를 마친 이모씨는 국내에 벤처캐피털 업체를 설립하고 코스닥에 등록된 관계사 B의 지분 73%를 인수했다. 그리고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6∼7개사의 역외펀드를 설립하고 이 펀드가 관계사에 투자하는 것처럼 꾸며 외자유치설을 유포, 주식을 팔아 1백5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1백35억원을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외자유치 과정에서 불법 거래가 크게 늘고 있지만 기업들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하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 조세피난처와의 거래 규모 =OECD가 지정한 35개 조세피난처 지정 국가 및 홍콩 말레이시아 등 조세회피성 9개 국가들과 국내 기업(개인 포함)의 거래 규모는 99년 4백91억달러에서 지난해 5백85억달러로 늘어났다. 문제는 자금 출처가 투명한 무역거래보다 자금출처를 찾기 어려운 무역외거래 및 자본거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세피난처와의 외환거래 규모도 99년 3백41억달러에서 지난해 5백7억달러로 크게 늘었다. 한상률 국세청 국제조사담당관은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세금회피는 거대 국제자본 또는 불법 조성된 자금이 세금 부담없이 막대한 자본이익을 취한다는 문제점이 있다"며 "이는 불법적인 외화유출과 불법자금의 세탁창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대책 =국세청은 조세피난처와의 거래 전반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하면서 세금탈루 혐의가 포착되면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세무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최근 OECD가 이들 조세피난처 국가들과 2005년까지 유해 조세제도를 폐지하고 금융정보를 포함한 정보교환에 응할 것을 약속한 상태라 조세피난처 거래에 대한 정보수집이 용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OECD와의 공조를 위한 인력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