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相民 칼럼] 공적자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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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문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우울해진다.
하나은행의 서울은행 인수만 해도 그렇다.
그것은 5조6천여억원의 공적자금 중 4조5천여억원을 건질 수 없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에 반가운 뉴스가 아닐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울하고 답답해지는 까닭이 '엄청난 손실'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숫자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날아간 돈이 엄청나리라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던 일이기도 하다.
답답하고 우울한 것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논란 때문이고,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서울은행 노동조합이 재입찰을 요구하고 쟁의신고를 했다고 한다.
서울은행과 하나은행의 합병은 공적자금 회수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못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서울은행의 누적 적자로 인해 하나은행이 약 1조원의 세금을 경감받게 되기 때문에 세금낼 돈으로 서울은행을 거저 가져가는 꼴이라는 얘기다.
이익을 내는 우량 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 합병해서는 안되고,론스타처럼 서울은행을 지금대로 끌고갈 곳에서 인수해야 공적자금으로 인한 국민 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서울은행 관계자들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입장인지는 의문이지만,이번의 경우 누적 결손이 인수자에게 재산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형식논리상 꼭 틀렸다고 하기만도 어렵다.
세상사는 숲을 보느냐 나무를 보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게 마련이지만,공적자금 관련 사안은 정말 그런 측면이 두드러진다.
예금보험공사가 재산을 가압류한 부실 금융기관 및 기업 임원 5천명만 해도 그렇다.
"대출해주라고 요구할 땐 언제고 지금 와서 책임을 지라니 말이 되는가" "감사라는 자리가 손발도 없는 허울 뿐이었던 건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 분식회계에 책임을 지라니 억울하다" 등등 모두 그나름대로 할 말이 있고 또 '논리'가 있다.
사안이 좀 복잡하다 싶으면 입장에 따라 제각각인 '논리'는 더욱 복잡하고 다기화된다.
해를 넘겨가며 계속되고 있는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그 좋은 예다.
"수조원씩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화종금과 충청은행 대주주였던 한화가 과연 대한생명 인수 자격이 있느냐" "부실 금융기관 대주주였던 기업도 연 2%의 저리 증금채를 사면 다시 금융업 진출을 허용한다는 금감위 지침에 따라 1천2백억원어치를 매입했으니 끝난 일 아닌가" 한화의 입찰자격 요건을 둘러싼 입씨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평가된 계열사 주식을 연말께 20% 이상 서로 돌아가며 매입한 뒤 자산가치와 주가간 차액을 특별이익으로 계상,적자를 흑자로 바꾼 한화계열은 분식회계가 아니었다면 재무구조 요건도 맞지 않는다" "회계기준이 그런 유형의 특별이익(負의 영업권)을 20년 동안 계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한해에 한꺼번에 하지 못하도록 금하지 않고 있는 이상 분식회계란 말도 안된다"는 주장과 반론이 팽팽하기만 하다.
'자격요건은 문제될 게 없다'는 전윤철 부총리의 발언만도 몇차례나 되풀이됐지만 관계 당국 내에서조차 이론(異論)이 여전하고,최근 들어서는 대한생명이 큰 폭의 흑자를 내면서 인수가격에 대한 시각차까지 겹쳐 논쟁은 더욱 가열되는 느낌이다.
공적자금 문제의 핵심인 부실기업 정리는 그 속성이 이렇게 복잡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결론이 어려울 건 너무도 당연하다. 자칫 특혜시비에 말려들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담당자들도 몸을 사리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IMF로 양산된 부실기업 중 정리작업이 완결된 게 손꼽을 정도에 그치는 것도 바로 이런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 부실정리가 가속화될 전망은 없다.
'절름발이 오리가 아니라 죽은 오리 같다'는 소리가 나온다는 일부 외지 보도는 차치하더라도,정권 말기의 부실기업 정리는 이래저래 더욱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6·13 재보선으로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공적자금 국정조사가 사실상 기정사실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원인이건 부실정리가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국민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제 각기 제 주장만 하는 분위기,누구도 단안을 내리려 들지 않는 상황이 걱정스럽고 답답한 것은 바로 그래서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