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문명의 가속도 .. 김충일 <아리랑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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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3@arirangtv.com
"초기화면이 뜨는 데 8초를 넘기면 웹사이트로서 가치가 없다."
미국의 웹사이트 관리사인 키노트가 온라인 고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내린 결론이다.
바야흐로 '속도전'의 시대다.
빛과 속도와 겨루는 '광속(光速)의 시대'이기도 하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것일까.
웬만큼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도 스스로를 '컴맹'이라고 한다.
최신 기능에 익숙하지 못하면 컴맹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원고를 쓸 땐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초보적인 단계만 익혀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 기능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돼 새 버전이 출시된다.
40,50대 이용자의 경우 그 기능을 따라잡기 힘들고 테크놀러지의 발전이 이처럼 인간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테크놀러지는 스스로의 가속도에 의해 항상 최첨단을 추구하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핸드폰 문자메시지 전송하는 방법을 익히고 나면 핸드폰 결제시스템을 따라가야 한다.
휴대폰이 PC의 수요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으니,이제 기술문명의 가속도는 예측불허의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밀란 쿤데라의 장편소설 '느림'은 이런 기술문명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오토바이 운전자와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뛰면서 생기는 미묘한 신체적 변화와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밖에 있게 되고 비신체적 속도,비물질적 속도,순수한 속도,속도 그 자체,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하게 된다."
이같은 현대의 속도문명에 대한 대안운동이 최근 이탈리아의 한 지방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 '슬로푸드 운동'은 다소 복잡하고 번거롭더라도 식사와 미각의 즐거움을 되찾자는 것이다.
이 운동은 패스트푸드에 대한 단순한 반대운동이라기보다 속도의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세태에 대한 경종(警鐘)이다.
뿐만 아니라 기술문명의 속도에 마비된 인간의 육체를 되찾자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