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내리고 은행이 고객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다.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인을 세우거나 믿을 만한 소득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제도금융권을 벗어나 고리의 사채를 빌려쓰게 되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가 돼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 교수로 일하던 무하마드 유누스(현재 그라민은행 총재)는 지난 76년 이런 현실에 반기를 들었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대기근으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이 극도로 궁핍해졌고 대학가 주변의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을 주민 42명이 대금업자에게 빌린 돈은 단돈 8백56타카(27달러).유누스는 이 돈을 주민들에게 무이자로 빌려주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구제책으로는 가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요청한다. 하지만 은행은 갖은 핑계를 대며 대출을 거부한다. 왜 가난한 사람은 은행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가. 유누스는 가난한 이들도 융자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투쟁하던 끝에 이들을 위한 은행을 설립한다. 올해로 설립 26년째를 맞은 그라민은행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정재곤 옮김,세상사람들의 책,1만3천원)는 이 은행을 통해 가난 없는 세상을 실현하려 애써 온 유누스 총재의 자서전이다. 그라민은행은 현재 방글라데시 전역에 1천1백75개 지점과 2백4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융자규모가 1천6백억타카(약 3조3천6백억원)에 이른다. 회원의 95%는 여성이다. 또 직원수가 1만2천여명에 이르고 재정구조도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받을 만큼 탄탄하다. 대학 교수가 세운 빈자들의 은행이 어떻게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인간은 가난으로 고통받도록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유누스 총재의 신념과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누스 총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선이 아니라 평등한 기회'라고 강조한다. 제도권 금융기관이 가난한 이들에게 문호를 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라민은행이 소액신용융자라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낸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이 은행에서는 자신이 가난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여건이 비슷한 5명이 연대 융자를 신청하면 돈을 빌려준다. 담보나 보증도 복잡한 대출서류도 필요 없다. 사람은 정직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돈을 갚지 않더라도 사법처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은행의 상환율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98%에 달했다. 그라민 은행의 설립과정과 다양한 실험들,주택 융자와 의료시스템 등의 새로운 도전까지 담고 있는 이 책에서 유누스 총재는 '우리 모두가 가난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꿈을 함께 나눈다면 그런 세상은 실제로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